대한민국 영화계에는 그 사람의 이름만으로 상당히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배우들이 존재한다. 살짝 거품이 있는 몇몇 배우를 제외하면 최소 100만에서 심하게는 200만까지도 관객을 끌어낼만한 티켓파워를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슈퍼스타의 대접을 받으며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동건, 송강호와 같은 배우가 그렇다.

이들에 비해 분명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자기가 출연한 영화를 꾸준히 흥행시켜온 배우가 있다. 엄청난 대박은 드물었지만 꾸준한 흥행을 만들어 온 차태현이다. 그의 흥행 기록을 살펴보면 이렇다.

엽기적인 그녀 : 약 488만
연애소설 : 약 165만 명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 약 234만 명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 약 73만 명
투가이즈 : 약 93만 명
새드무비 : 약 106만 명
파랑주의보 : 약 33만 명
복면달호 : 약 160만 명
바보 : 약 97만 명
과속스캔들 : 약 830만 명
핼로우고스트 : 약 300만 명

▲ 배우 차태현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영화 '챔프'(감독 이환경) 제작보고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아주 저조했던 파랑주의보를 제외하면, 흥행에 썩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도 거의 100만 명 대의 관중을 꾸준히 불러모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흥행세를 보면 재밌는 추세를 읽을 수 있는데, 일단 엽기적인 그녀로 대박을 치고 나서는 꾸준히 성공하다가,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때부터 흥행세가 잦아들더니, 과속스캔들로 완벽하게 부활한, 그러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흥행 파워를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차태현의 꾸준한 흥행 파워는 그가 활약하는 분야가 가벼운 코미디라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는 가장 안정적으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배우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가진 예능능력은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을 한 바퀴 도는 순간 자연스럽게 영화 홍보를 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홍보에 있어서도 탁월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차태현은 최고의 흥행 배우라기보다는 안정적인 흥행을 보증하는 배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의 얘기들보다 그를 잘 이해하는 데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연기다. 그는 특유의 이미지를 가지고 가장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태현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모습은 '장난꾸러기'다. 차태현에게서는 장난끼 많은 옆집 오빠 혹은 형 같은 그런 이미지가 풍겨나온다. 그러면서도 밉지 않은 캐릭터가 있다. 이런 그의 캐릭터는 그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력을 더해주게 된다. 이것은 차태현이라는 배우의 타고난 재능이다.

예를 들어서 엽기적인 그녀가 오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모르는 여자와 모텔을 가더라도 그에게는 설득력이 부여된다. 너무나 착한 이미지의 배우라면 '답답할'것이고, 너무 멋진 배우라면 '현실성'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차태현은 왠지 그럴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가 억울해 하는 혹은 짜증내는 표정을 짓는 순간 우리는 배우의 진심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속스캔들 같은 경우도 그렇다. 자꾸 짜증내고 말을 험하게 하지만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태현의 본심은 그게 아닐 거라는 모종의 신뢰관계가 배우와 관객사이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후 차태현이 갈등을 풀어 나갈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차태현은 단순히 웃기는 배우가 아니다. 얼굴에서 가장 큰 페이소스를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가 차태현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웃음의 최고는 페이소스(슬픔)라 했다. 찰리채플린의 작품에서 언제나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인 장면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슬픈 모습이 웃음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 차태현은 이것을 놀라울 만큼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차태현표 코미디에는 '짠한 장면'이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차태현을 반의 반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슬픔 또한 차태현이 가지고 있는 그 이미지에 기반한다.

▲ 영화 '챔프' 스틸이미지
따라서 차태현은 차태현의 그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배역에서 더욱 빛을 내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캐릭터를 배역에 완벽하게 투영시킨다. 진짜 차태현의 옷을 입혀 배역의 설득력을 극대화시키는 배우다.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것처럼 배역에 자신을 완벽히 투영해서 배역을 살리는 연기 또한 최고의 연기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차태현의 연기는 인간 차태현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고 난 이후 차태현이 화면에서 표현하는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 갈수록 그의 연기도 똑같이 더욱 농익어 갈 것이고, 더 다양한 색을 내게 될 것이다.

차태현을 단순히 웃기는 배우, 혹은 예능감이 충만한 배우로 보기는 힘들다. 그는 너무 많은 영화에서 그만의 연기가 어떤 건지 분명히 보여준 중견배우이기 때문이다. 중견배우이긴 하지만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는 발전형 배우이기도 하다. 아직 그는 관객이 놀랄 만큼 격차가 큰 연기변신은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연기의 폭을 넓히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놀랄 만큼 새로운 배역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가 우리에게 어느 수준의 연기까지 보여줄지 항상 궁금하고 기대되는 배우임에 분명하다. 물론 우리는 그때까지 그가 주는 감동과 웃음에 감사하며 그의 영화를 보면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차태현이라는 배우는 충분히 최고의 배우이기 때문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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