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경련이 일어나는 아픔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달렸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 투혼이라는 것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준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한국 육상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승선을 가장 앞에서 6번째로 통과하고는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아쉬움은 있어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낸 톱10이었기에 후회는 없어 보였습니다.

한국 경보의 대들보 김현섭(삼성전자)이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 6위에 오르며 선전했습니다. 김현섭은 28일 오전,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출발해 코스를 도는 남자 20km 경보에서 1시간21분17초의 기록으로 골인해 3명의 러시아 선수, 콜롬비아, 중국 선수 등에 이어 6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1993년 슈트트가르트 대회에서 마라톤 김재룡이 4위에 오른 뒤 1999년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이 세운 6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습니다. 경보 종목에서는 세계선수권 출전 사상 첫 톱10이었으며, 한국 육상 전체적으로도 2007년 남자 세단뛰기 김덕현 이후 4년 만에 톱10 선수를 배출하게 됐습니다. 메달권은 아니어도 충분히 한국 경보, 나아가 한국 육상에 상당한 의미를 가져다준, 값어치가 있는 성적이었습니다.

▲ 김현섭 (사진=대한육상경기연맹)
사실 경보라는 종목은 대단히 힘든 종목입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하는 타 종목과 달리 경보는 그 달려야 하는 욕구를 참으면서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에 탈락하는 선수도 많고, 그 때문에 변수가 많은 종목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경보는 한국 육상에서 가장 기대하고 주목했던 종목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김현섭이 있었습니다. 2004년 세계주니어선수권 1만m 경보에서 3위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김현섭은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주요 대회에 출전해 한국을 대표하는 경보 선수로 떠올랐고 한국 기록도 5년 동안 5차례나 갈아치우며 현재 한국 기록 보유자로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유독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서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23위에,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 때는 34위에 머물렀습니다. 기량은 좋은데 이상하게도 메이저 대회와는 큰 인연이 없었습니다.

이를 깨기 위해 김현섭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무엇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경보가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로도 거론됐던 만큼 부담감은 컸습니다. 결국 경기 전날 저녁에 급성 위경련이 일어났고 대회 출전 포기를 진지하게 검토할 정도로 상태는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도 김현섭은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을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선 김현섭은 출발선에 섰고 경기 초반부터 무서운 페이스를 보여주며 역보(力步)했습니다. 그리고는 세계에서 6번째로 빠르게 잘 걷는 선수로 김현섭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올렸습니다. 마지막에 쓰러져 들것에 실려나갈 정도로 진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고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그토록 바랐던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어도 아름다운 세계 6위에 오르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 징크스까지 이겨내며 '진정한 승자'의 면모를 보여준 김현섭이었습니다.

한국 경보 등록 선수는 10여 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마라톤과 다르게 경보 경기만을 위해 도로에서 대회를 치르는 것이 국내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이뤄낸 김현섭의 성과는 분명히 대단했습니다. 이번 선전을 통해 경보라는 종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대회 초반 한국선수단에도 강한 자신감을 선사한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투혼으로 값진 6위를 이뤄낸 김현섭의 선전에 많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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