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최선욱 칼럼] 코로나19 민생 위기 대책에 포함된 전 국민 통신비 지원안이 논란을 겪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통신비 지급안은 만 13세 이상 국민 약 4,640만 명에게 통신비 2만 원씩을 일회성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각 가정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세, 수도요금, 가스비 등 여러 고정비용 중 통신비 부담이 가장 크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통신비 지원예산 1조원은 시장에 풀리는 게 아니라 고스란히 통신사에 잠기는 돈“이자 선심성 낭비라고 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통신비 지원은 영세 자영업자나 골목 매출을 올려주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통신비 지원액의 절반은 이통사가 요금에서 직접 감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성명을 냈다.

문제는 비싼 통신비다

영국 Existent사가 운영하는 cable.co.uk는 올해 5월 228개국 5,554개 모바일 데이터 요금제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국가별 1GB의 모바일 데이터 비용을 비교한 바 있다(worldwide-data-pricing). 흥미롭게도 이 웹사이트 내 아시아 지역에 대한 요약 글에는 한국이 기술적으로 가장 선진국인데도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한국의 평균 1GB 모바일 데이터 요금은 10.94달러(미화)로 아시아 지역 28개국 중 가장 높았고 요금이 가장 낮은 인도 0.08달러의 약 125배 높았다. 한국보다 GDP 규모가 큰 11개국의 평균이 약 3달러 수준인 걸 고려하면 국내 통신비는 너무 비싸다. 섬나라도 아니고 국토 대비 인구밀도가 낮지도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공약으로 '가계통신비 부담 절감 7대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기초연금 수령 노인과 생계·의료수급자의 통신비 감면 등 통신비 절감정책이 추진되었다. 그런데 왜 통신요금은 여전히 비쌀까?

연합뉴스 자료 사진

정부는 비싼 통신요금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간 이동통신사의 요금제가 시장에 나오기 전 가격의 합리성을 먼저 살펴보는 감시자이자 허가권자는 바로 정부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통신요금 이용약관인가제(요금인가제)의 주무부처였기 때문이다. 통신요금 인가제는 1991년 통신시장 내 지배적 사업자의 약탈적 요금과 과도한 요금인상을 막아 시장 왜곡과 이용자 후생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통3사는 신규요금제를 설계할 때마다 과기정통부에 이용약관을 신고하고, 요금산정근거 자료를 제출한다. 인가 조건도 까다롭다. 요금은 공급비용, 수익, 비용·수익의 서비스별 분류, 서비스 제공 방법에 따른 비용 절감, 공정한 경쟁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전기통신사업법 28조 3항 1호). 따라서 이통3사의 요금제는 해당 기업들이 책정하여 그냥 시장에 나온 것이 아니라 정부의 심의·평가 등을 거쳐서 책정된 것이다. 게다가 사후감독권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통3사로부터 매년 별도 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된 영업보고서를 제출받는다. 이를 검증해 사업자가 비용이나 수익을 부당하게 분류해 요금을 산정하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을 매긴다.

이통3사가 민간기업인데도 정부가 이들로부터 민감한 자료를 받는 데는 이동통신 산업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공의 자산인 주파수를 특정 민간업체(이통3사)에 부여한 만큼 ‘공공성’이 강조된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째 비싼 통신비는 계속되자 2011년 참여연대는 "통신서비스는 국민의 생활 필수재이니 원가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이동통신사에 원가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정부의 기조는 “정보가 공개되면 이통사의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일부 정보는 비공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8년 6월 참여연대는 과기정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기초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주요 요지는 정부가 통신사업자들의 적정이윤을 고려한 ‘투자보수’를 산정했으나 오히려 투자보수 개념이 통신사들의 이윤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보수율’은 7%~10%대로 과도하게 책정되어 과도한 이윤을 보장했고, 상대적으로 ‘원가보상율’을 낮춰 통신비가 과하지 않다는 통신사들의 논리를 뒷받침하여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높은 요금으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고 보았다.(참여연대, LTE 원가 관련 회계자료 및 인가자료 1차 분석자료 공개) 이에 대해 이동통신사들은 높은 투자보수율의 근거로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 개발 및 투자를 들었다. 과기정통부는 그간 적정요금 수준보다는 세계최초 LTE, 5G 상용화라는 부처의 성과를 위해 고의적으로 높은 원가보상율을 보장했던 것은 아닐까?

과기정통부는 이제 시장경쟁이면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30년 동안 유지되었던 ‘통신요금 인가제’는 지난 5월 국회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폐지되었다. 주요 폐지 근거는 ‘통신요금 원가 산정 자료 공개’ 논란과 함께 요금 인가제가 사업자 간 자유로운 요금 경쟁을 가로막고 결과적으로 통신사들의 요금 담합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2014년부터 정부가 폐지수순을 밟은 것이다.

정부가 그간 보여 온 높은 통신요금 허가의 책임회피로 보이는 대목이다. 과기정통부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신규 요금제를 최초로 신고한 이후 15일간 심사해 문제가 발견될 경우 반려할 수 있는 ‘유보신고제’가 대안으로 법 조항에 포함돼 있어 시민단체들이 우려하는 통신비 인상 우려는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9월 8일부터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고 다음달 19일까지 의견수렴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요금인가제 당시에도 비싼 통신요금을 잡지 못했는데, 15일의 심사기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까? 그땐 아마도 시장경쟁이면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부의 구성원을 공공적 개인으로 간주하여 최선의 정책선택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의 핵심정책은 2008년 IPTV 도입시기부터 국민보다는 통신3사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과기정통부가 주도했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의 통신사 플랫폼 규제 최소화, 유료방송 가입자의 시장점유율 규제 폐지에 이어 통신요금 유보 신고제, 전 국민 통신비 지원 같은 정책들이 정말 국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인지 의문이다.

* 해당 칼럼은 개인 SNS에 게재된 것으로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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