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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 시대의 한국 정치[김민하 칼럼] 거대양당의 책임 정치와 대안의 진보정치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20.09.15 07:59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일주일 넘게 똑같은 얘기뿐이다.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 군에 있던 시절 휴가 연장을 어쨌다는 게 이러고 있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간 결론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위법은 아니나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고, 그 이상의 문제제기는 정치공세나 음모라는 거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관련 편의를 봐주기 위해 보좌관 등이 백방으로 뛴 흔적은 의문을 남기기 충분하다. 권력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이들뿐인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결국에는 관철된 어떤 특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의문은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유권자가 공평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의심들까지도 정치적 문제가 된다. 따라서 집권세력은 단지 법을 따질 게 아니라 이런 의구심을 잠재울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게 정치에서의 책임 윤리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정치가 이런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당직병을 공격하는 여당 의원의 모습은 이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폭로의 배후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은 집권세력으로서의 책임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불리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일종의 ‘수’를 내자는 걸로 해석된다. 거대양당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처음은 아니다. 무슨 일이 날 때마다 진상을 규명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각자에게 유리할 대로 사건을 활용하는 것에만 열심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책임 윤리를 논할 수 있는 기반인 주류정치의 합의구조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권부터다. 통치권력이 파벌적 이익에 복속하는 현상이 이전보다도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났고, 단지 정파가 달라 탄압당한 주류 정치 내 반대파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이 정권이 주류 내부의 어떤 합의구조를 상정하지 않고 비주류 혹은 피해자를 자칭하면서 모든 사회적 자원을 정파 논리에 동원하려는 것은 “상대도 그랬다”는 식의 보복 논리가 이런 일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서로에 대한 복수를 거듭하는 국면이지만 결국 주류 정치가 가야 할 길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어찌됐건 무너진 엘리트 체제의 합의구조를 복원해내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금의 이 상황을 보다 더 발전 심화시켜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탈진실’에 의존하는 정파적 내전 상태의 지속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양쪽 지지자들의 극단적 행태는 ‘탈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이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 체제와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존재는 주류 정치가 여전히 첫 번째 해법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으나 대선까지 가는 국면에서 결국은 통치에 있어서의 책임성을 어떻게 발휘할 것이냐를 두고 서로 경쟁했으면 한다. 마침 한쪽은 뭔가를 개혁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그 과정에서의 형평과 공정을 논하고 있으니 각자의 가치관을 근거로 국가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거대양당으로의 정파적 구심력이 강화되는 배경에는 대안적 정치가 없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과거 짧은 순간이었으나 ‘대안적 정치’의 자리를 진보정당이 차지했던 때도 있었다. 진보정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하던 시기 진보정치의 해법은 시기상조라거나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적어도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는 당위를 폭넓게 인정받았다.

이러한 정치적 호의는 오늘날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됐다. 진보정치가 분열을 거듭해온 데다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이라는 시기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보정치가 스스로 존재적 당위를 잃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부터 진보정치도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기성정치의 논리를 따르는 세력처럼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치가 대안이 되기 위해서 명분의 정치를 되살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요즘은 대의명분이나 원칙을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선비가 도 닦는 소리 하는 취급을 하지만, 오히려 비주류 정치에 다른 선택지가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특히 대중적 기반이 붕괴한 상태에서 선거연합 등의 원내정치에 집중하거나 자족적 조직 관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2010년 지방선거는 무상급식 돌풍으로 당시 야당이 크게 이겼다. 당시의 정치적 소용돌이는 2천년대 초반부터 진보정치와 시민운동이 바닥에서 친환경무상급식운동이라는 대의명분에 따른 기반을 닦아 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진보정치가 ‘야권연대’라는 테이블에 참여해 승부를 거는 일이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류 정치의 누구도 진보정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선거법 개정의 파국은 이런 현실을 방증한다.

2일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열린 선거유세에서 대표 후보로 출마한 김종철(왼쪽부터), 김종민, 배진교, 박창진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침 정의당은 지도부 선거를 치르고 있다. 훌륭한 인물들이 출마한 것으로 보이나 여당과 뭔가 차별화 하자는 것 이상의 대의가 확인되지는 않는 것 같다. 후보들이 내놓는 대안도 ‘수’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지금은 2020년이므로 2천년대 초반의 해법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파적 탈진실이 아니라 보편적 진실을 무기로 대중에 호소하면서 존재적 근거를 쌓아 나간다는 청사진을 만들고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창당에서 분당에 이르는 8년은 진보정당의 전성기였다. 진보정의당을 창당한 일도 이제 8년이 돼간다. 새롭게 시작할 때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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