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밴드가 마침내 고통의 줄 위에 서기 시작했다. 8강 진출자를 가리는 일대일 서바이벌 16강전은 누가 올라가도 당연한 일이고, 반대로 누가 떨어져도 이상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톱밴드 16강에 올라온 팀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깔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 선명한 색깔들 속에서도 유난히 밝고 선명한 빛을 발하는 밴드들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6강전의 변수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선곡이고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의 실수여부다. 모두가 충분한 연습을 했으며 음향 손실을 막기 위해서 제작진은 애초에 무대를 양쪽에 마련해서 미리 사운드 및 기계적 점검에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했다. 보통은 이 두 가지 중에서 후자가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데 16강 첫날의 풍경은 오히려 선곡에 대한 고통이 모든 팀들에서 나타났다.

코치가 생각하는 곡과 팀들이 원하는 곡이 모두 달랐다. 그러나 대부분 코치들의 뜻을 꺾었지만 오직 마왕 신해철만은 고집을 굽히지 않고 급기야 팀과 결별은 한 채 16강전 무대를 맞게 됐다. 그로써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번아웃하우스는 게이트플라워즈에 비해 현격하게 불리한 경연을 하게 됐다.

코치 없이 연습해온 것도 그렇지만 이미 갈등으로 인해 코치와 결별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심사위원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치가 담당한 밴드의 연주에 반응하지 않고 심지어 등까지 돌리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그 밴드에게 후한 평가와 점수를 줄 심사위원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100% 한쪽으로 몰리지 않은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객관적 노력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두 가지 불리한 점을 등에 업고 경연에 나선 번아웃하우스가 견뎌야 할 상대는 강력한 우승후보인 게이트플라워즈라는 점에서 핸디캡은 셋이 된 셈이었다. 안타깝게 번아웃하우스는 그 불리함을 결국 극복해내지 못하고 8강 진출에 실패를 하게 됐다. 결과가 그렇게 되자 신해철의 태도에 대한 비난이 없지 않다. 다른 코치들 역시 같은 갈등을 겪었지만 적어도 경연무대에서는 그런 갈등을 일단 억누르고 자신이 맡은 밴드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비교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신해철과 번아웃하우스의 문제에 대해서 판단하기 전에 슈퍼스타K 특히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 맨토란 어떤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음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위탄의 맨토들은 맨티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대했고, 맨티들 역시 부모 대하듯이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톱밴드의 코치나 밴드들은 그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치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은 번아웃하우스만이 아니고 거의 모든 밴드들이 그랬다.

다 그랬는데 왜 유독 신해철만 결별을 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신해철이 잘못이라는 논리를 펴기 쉽지만 그럴 일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신해철의 결별보다는 밴드와 코치의 전반적인 갈등이라는 현상이다. 톱밴드에 나온 밴드들은 위탄의 맨티들과 전혀 다르다. 우선 개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코치에게 무작정 의지하지 않게 된다. 갑자기 정해진 코치보다는 몇 년 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멤버들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급기야 팀의 뜻이 코치와 다를 경우 거의 자신들의 의견을 꺽을 가능성이 적다. 그것이 개인이 참가하는 일반 오디션과 팀 배틀이 이뤄지는 톱밴드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그래서 코치의 결정보다 팀의 뜻을 고수하려던 번아웃하우스에 대해서 결별을 선언한 신해철의 입장은 무책임하거나 권위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솔직하다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해철 역시 넥스트란 밴드를 20년 넘게 해온 밴드이기에 그 자존심을 방송이라고 굽히거나 감출 수 없었다고 보인다. 밴드란 일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독특한 고집이 있다. 록음악이 비주류인 한국사회에서 밴드를 한다는 것은 그 고집이 아주 고약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뜻을 꺾지 않은 신해철과 번아웃하우스에 대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은근히 조장하는 논란 마케팅도 아니다. 다만 그들 모두가 밴드이기 때문에 그럴 뿐이다. 다만 경연에서 번아웃하우스가 연주하는 동안 시선을 한 번도 주지 않은 것은 아무리 자기감정에 솔직한 로커라고 할지라도 일단 선배로서의 모범은 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 점만은 신해철에게 아쉬웠던 대목이었다. 코치는 포기했어도 적어도 음악만은 들어주었어야 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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