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오전 9시 여자 마라톤을 시작으로 총 9일간의 열전에 돌입하는 이번 대회에는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이 총출동해 육상의 진수를 마음껏 느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위대한 도전에 많은 팬들은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육상 스타들에 가려진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의 도전도 이번 세계육상선수권에서 꼭 지켜봐야 할 부분입니다. 비록 메달권 성적을 내기에는 다소 벅찬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육상이 몇 단계 이상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면에서 의미 있는 대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 트랙을 도는 한국 육상 대표 선수들 (사진=대한육상경기연맹)
한국 육상이 이번 대회에 출전시킨 선수는 모두 60명입니다. 이는 당연히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개최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지난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의 19명보다 무려 3배가 넘는 수준의 선수단을 출전시킵니다. 그러나 개인 기록을 놓고 봤을 때 세계적인 수준에 다가가 있는 선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남자 경보 김현섭이 세계 랭킹 7위에 랭크돼 가장 기대되고 있지만 한국 육상의 자존심과 같은 남자 마라톤조차 2시간10분 안에 들어오는 선수가 단 한 명에 불과할 만큼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트랙, 필드 종목은 좀처럼 눈에 띄는 선수가 없어 이번 대회 A기준 기록을 통과한 선수가 단 1명(남자 110m 허들 박태경)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먼 선수들만 참가합니다.

2009년 베를린 대회에는 19명 출전 선수가 모두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고, 같은 해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노골드 충격을 입으며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그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 명 이상의 세계선수권 메달 선수를 배출하겠다는 '현실성 없는 목표'가 한 몫 했습니다. 선수들의 신체적인 특성, 기술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목표였다 보니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고, 실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선수, 지도자 등 전체적인 육상인들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록 자체가 세계와 차이가 있다 보니 국내 대회에만 안주하려 했고 이에 더 뻗어나가지 못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고심 끝에 육상계는 메달 선수 배출 대신 '10-10' 프로젝트, 즉 10명의 선수가 10위권 성적을 낸다는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며 궤도를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에게는 두둑한 포상금을 주겠다는 당근책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2010년에는 그나마 좀 더 나아진 성적을 냈습니다. 5월에는 김국영이 남자 100m에서 31년 만에 한국 기록을 연달아 갈아치웠고, 11월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도약 간판 김덕현, 정순옥, 남자 마라톤 지영준, 여자 허들 이연경이 금메달을 목에 걸어 2006년 도하 대회 때 1개 금메달에 그친 것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아도 선수들 사이에서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선수권을 유치했는데 우리 선수들의 성적은 다 좋지 않다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애써 자기 위안을 하는 것이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관심 속에서 선수들은 최선을 다 했고, 이제 그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조금이라도 맺으려 할 것입니다. 실패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육상은 6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선수를 파견해 세계의 벽을 부딪혀보려 합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몇몇 종목에서 적어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을 남긴다면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육상에 희망의 싹이 트일 수 있다고 봅니다.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아도 주목할 선수는 많습니다. 경보 세계 랭킹 7위 김현섭, 마라톤 샛별 정진혁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입니다. 또 이번 대회를 위해 유독 많은 노력을 기울인 남자 계주 400m도 관심 대상입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남녀 도약 간판 김덕현, 정순옥, 남자 100m 한국 기록 보유자 김국영, 여자 장대 높이뛰기 한국 기록 보유자 최윤희, 남자 창던지기 정상진 등도 눈여겨 볼 선수들입니다. 모두 최근에 좋은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다 지난해 어느 정도 희망을 보였던 한국 육상이었습니다. 그 희망을 이어 이번 세계선수권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높게, 새로운 도약의 길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한국 육상에 이번 세계선수권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세계적인 선수들만큼이나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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