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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신드롬, 언택트 시대에도 유효! '우정사'가 건네는 뜨거운 메시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9.13 13:31

[미디어스=이정희] 언택트의 시대이다. 비대면, 비접촉이 권장되는 시대, 하지만 그럴수록 만남과 관계에 대한 갈망은 더해간다. 만날 수 없어 더욱 사람을, 사람이 주는 온기를 갈구하게 되는 시대, 이 쉼표와 같은 시절에 한번쯤 '관계맺음'과 '사랑'에 대해 돌이켜 보는 건 어떨까? 

이러한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노희경 작가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이다. '우정사'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1999년 작임에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드라마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현재형'의 이야기가 되는 드라마. 극중 재호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재호와 신형의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되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가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 같은 인생, 강재호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재호(배용준 분)는 27살 늦깎이 대학생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교정을 누비는, 스포츠카보다 더 훨친한 외모의 그는 언뜻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난 놈'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난 놈'답게 자부심을 넘어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사람 겉보기만으로 모른다고, 그 잘남은 재호가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걸친 '갑옷'과도 같은 것이다. 재호가 어릴 적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어린 재호와 그보다 더 어린 재영을 놀이공원에 버렸다. 재영을 데리고 술을 파는 이모를 찾아온 재호, 그 후부터 쭉 재호는 '가장'이었다. 

스물일곱 살 가장인 재호는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의 '게'를 파는 능력 있는 경매인이 되었다. 남자한테 돈을 털린 이모에게 뭉칫돈을 건넬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재영(이나영 분)을 대학에 보낼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재호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버린 엄마, 아니 세상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 대학에 갔다. 대학에서 만난 현수(윤손하 분)를 통해 노량진 수산시장 게 경매인이 가질 수 없는 '신분 상승'을 꿈꾼다. 

현수도 재호에게 호감을 보이고 이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고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애써 이루어왔던, 그가 도달하려는 했던 고지는 '신기루'처럼 허물어져 간다.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물심양면 보살펴온 재영. 대학 졸업시키고 그럴 듯한 가정을 이루게 하면 재호의 임무는 완수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재영이 하필이면 재호의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세상 무능력하다 못해 하는 일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석구(박상민 분)와 사랑에 빠졌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친구라고 품었던 석구로 인해, 게 경매인 자리마저 놓치게 생겼다. 

아니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재호 자신일지 모른다. 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간 후 오로지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줄곧 달려온 인생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에 목매는 이모를 한심하게 여기며 자신은 사랑도 '쟁취'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 강사로 들어온 신형(김혜수 분)이 자꾸 신경 쓰인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안온하게만 자란, 온실 속의 화초라 여겨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잡초처럼 살아온 자신 같은 사람을 신형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냉소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그녀 주변을 맴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말해버리게 만드는 여자. 어쩐지 그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아니 하기 싫어진다. 그건 신형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에 만난 오만불손한 학생이라 생각했는데 재호가 신경 쓰인다.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언뜻언뜻 보이는 황량한 눈빛에 마음이 간다. 

함부로 차버릴 수 없는 사랑을 향한 용기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서른의 시간 강사와 스물일곱 대학생. 남 보기에 행복하고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순탄하게 자란 외동딸과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달려온, 여전히 그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스물일곱의 가장. 아니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는 선한 세계관과, 세상을 향해 위선과 위악으로 똘똘 뭉친 뒤틀린 마음의 간극이 가장 컸다. 두 사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신형은 물론 재호 주변까지 그 누구라도 말리려고 했던 관계였다. 

하지만 사랑은 둘 사이의 불가능할 것 같은 것들을 자꾸 넘어서게 만들었다. 서른과 스물일곱, 안온한 삶과 들풀 같은 인생. 무엇보다 재호가 신형에게 한발한발 다가서게 되는 건, 어머니가 그를 버린 이래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선한 심성에 입혔던 위악의 갑옷들이었다. 억지로 자신을 버텨왔던, 그 뒤틀린 삶에 대한 복수와도 같은 '성취'들이 재호에게는 차츰 무의미해져 갔다.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44회 내내 시청자들의 가슴이 미어지도록 재호의 삶은 신산하다. 가장의 맘으로 돌보는 동생은 그의 뜻에 늘 어긋나고, 그가 겨우 이룬 것들은 그가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허물어져 간다. 게다가 하늘도 무심하게 겨우 스물일곱 재호에게 뇌종양이란 병마가 찾아든다. 그가 홀로 버텨왔던 삶이 여린 그에게는 너무 버거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드디어 재호가 신형에게 갔을 때 재호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다. 1999년 드라마 방영 당시, 아픈 몸임에도 재호가 드디어 신형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그 사랑에 울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과연 저런 상황에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알겠다. 그건 바로 '용기'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다. 

재호가 뇌종양을 앓게 된 이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재호에 대한 신형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채워지는 듯 보인다. 살고 싶다는 재호를 부여안고, 괜찮다며 울고 싶으면 맘껏 울라며 보듬어 준다. 하지만 그뿐일까.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재호가 자신의 병을 저어하여 신형에게 끝내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드라마의 마지막, 신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자신의 품에서 영원히 잠든 재호를 깨우지 않았다고 내레이션을 한다. 시청자들은 재호의 죽음을 보며 대성통곡했지만, 아마도 신형은 재호와의 완성된 사랑으로 오래오래 충만해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주기만 하는, 그런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재호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신형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내주었기에 신형 역시 '사랑'을 이루었다. 사랑은 덧셈 뺄셈으로 계산될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기에 아픈 재호로 인해 신형 역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삶의 마지막 고비에서 재호는 용기를 내주었다. 그는 죽어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긍정했고, 삶을 향해 열렬히 구애를 한 것이다. 사랑을 인정했고, 억지 욕심 부렸던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잃었던 것들이 그를 찾아왔다. 사랑이 왔고, 그에게 빼앗아가기만 하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곁으로 왔다. 오랫동안 미움이라 생각했던, 그러나 그리워했던 어머니도.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이 비로소 왔다. 너무 늦은 것 같지만 늦은 것은 없었다. 스물일곱 해의 재호가 얻은 것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래서 재호는 고단했던 스물일곱 해,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천형처럼 다가온 코로나 시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이야기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잃은 것이 많다고 통탄하게 되는 이 시대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그간 우리가 갑옷처럼 두르고 살았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정말 무엇을 향해 한 걸음 용기 내어 내딛어야 할까? 지금까지 나는 연탄재가 되도록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용기를 내보라 전한다. 늦었다고 생각한 지금이야말로 가장 뜨거울 수 있는 때라고.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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