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어머니가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다 요양병동으로 가셨다. 어머니는 평생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오셨던 삶의 여정에서 이제 스스로 당신의 몸을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다. 코로나로 인해 문병도 안 되는 상황, 모처럼 통화를 하며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냐는 질문에 매일 죽음을 기다리며 보내신다고 답하신다. 어머니 연배의 많은 어르신들이 병마와 싸우며 죽음을 기다리며 보낸다. 나이가 들고 병이 찾아오고, 그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을까? 그런 안타까운 상황에 이견을 제기하는 영화가 있다. 어느덧 일흔 중반이 된 다이안 키튼의 노익장이 돋보이는 <치어리딩 클럽>이다.

영화는 마샤(다이안 키튼 분)가 자신의 물건들을 거리에 내놓고 파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른바 '유품 정리 세일'. 물건을 사 가는 사람은 어떻게 죽은 사람의 유품이냐며 호기심을 표하고, 마샤는 담담하게 암으로 죽었다고 답한다. 그렇게 몇십 년 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집과 물건들을 정리한 마샤는 암 치료 예약 전화도 취소한 채 '선스프링스'라는 은퇴자들의 마을로 간다. 홀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려 한 것이다.

조용히 죽으려고 했는데

영화 <치어리딩 클럽> 스틸 이미지

하지만 웬걸, 마을 이름처럼 화사한 유니폼을 입은 선스프링스의 노인들이 마샤를 격하게 반긴다. 친절하게 마을 이곳저곳을 소개시켜주는 한편, 의무적으로 동아리에 들 것을 권고한다. 겨우 탈출하여 집으로 왔더니 옆집에 사는 셰릴(재키 위버 분)은 시끌벅적한 해프닝으로 마샤의 일상을 깨운다.

그러나 사교적인 활동을 강권하는 마을의 규정, 그리고 친절하다 못해 번거롭게까지 만드는 셰릴을 멀리하고 마샤는 칩거한다. 장례 절차에 대한 비디오를 보고, 약을 먹고 토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무기력하게 지내던 중, 도무지 두문불출하는 마샤가 혹시나 욕탕에서 미끄러져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동정을 살피러 온 셰릴과 부딪친다.

이를 계기로 셰릴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마샤. 대부분의 짐을 정리했음에도 선스프링스까지 들고 온 치어리더복, 거기에는 치어리딩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포기했던 젊은 날의 꿈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고심하던 마샤는 셰릴을 찾아가 자신이 못다 이룬 젊은 날의 꿈 치어리딩을 이곳 선스프링스에서 실현해 보겠다며 도움을 청한다.

마을 운영진을 찾아간 마샤와 셰릴. 마음에 드는 동아리가 없으니 스스로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동아리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8명의 인원이 되어야 하는 상황, 이를 위해 마샤와 셰릴은 '치어리딩 오디션'을 마련한다.

영화 <치어리딩 클럽> 스틸 이미지

오디션장에 온 할머니들, 오랫동안 요가를 해온 할머니를 제외하고 몸은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비록 몸은 '움찔움찔' 수준이지만 마음만은 어느 치어리더 못지않다. 그리고 <치어리딩 클럽>에서 주목해야 할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 마음은 청춘인 할머니들의 제각각 오디션 장면이다. <어른들의 그림책>에서 작가는 누워계신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디션 장면 속 할머니들의 모습은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여전히 마음은 하늘을 날 듯하지만, 몸은 오십견으로 팔도 올라가지 않는 노년이 되어갈 것임을 뭉클하게 보여준다.

'어디 치어리딩 같은 걸 하냐'며 반대하는 남편의 급사(?)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작된 여덟 할머니들의 '치어리딩' 동아리. 그들을 가장 열정적으로 이끄는 이는 바로 죽기 위해 선스프링스로 온 마샤이다. 연습에 앞서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시시콜콜한 증상을 열거하는 것과 달리, 마샤는 끝내 자신의 병을 숨기며 음식마저 제대로 먹지 못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면서도 열정적으로 치어리딩 동아리를 이끈다.

치어리딩 성공담, 그 이상

<치어리딩 클럽>의 이야기는 스포츠 성장 영화의 전형을 따른다. 다 같이 목표를 향해 '으쌰 으쌰'하지만 이런 이들의 단합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그 누군가에 의해 연습은 용의치 않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시도한 도전은 멤버의 부상과 함께 노인네들의 해프닝으로 온라인상에서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런 난관을 뚫고 다시 한번 멤버들은 힘을 합쳐 결국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기에 이른다는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영화 <치어리딩 클럽> 스틸 이미지

그럼에도 <치어리딩 클럽>이 다른 질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주인공이 바로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에의 여정에서 노인의 삶은 개별적이고 원자화되기 십상이다. <치어리딩 클럽> 속 노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선스프링스에 왔고 홀로 죽음을 감당하려 했다. 사교적인 셰릴도 알고 보면 자식 대신 손자를 키우며 그 손자의 알바비까지 털어 집세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로, 남의 장례식에 가서 끼니를 해결하는 등 궁색한 삶을 살고 있다. 여유로워 보이지만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이 경제 관리를 하는 바람에 단 돈 100달러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노년도 있다. 그렇게 죽음이든 돈이든,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저마다의 짐으로 허덕이던 이들이 치어리딩을 통해 '우리'가 되어간다.

함께 운동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며, 고립적이었던 삶을 넘어 '우정'을 키워나간다. 모두에게 끝내 밝히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쓰러져 버린 마샤. 그녀 역시 목전에 둔 죽음에 대해 홀로 감당해 왔던 두려움을 셰릴과 나눈다.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치어리딩 클럽에서 빠지겠다는 마샤에게 셰릴은 말한다. 두려움, 죽음, 그까짓 거 개나 줘 버리라고. 죽음을 향한 여정은 홀로 감당해야 할 짐이지만, 그 짐을 진 등을 토닥여 주는 우정으로 마샤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낸다.

만약 마샤가 젊은 날에 못 이룬 꿈 치어리딩에 대한 도전을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마샤는 자신의 집에서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마샤뿐인가. 그녀와 함께 반짝이를 흔들던 일곱 노인들의 삶은 어땠을까? 죽음 앞에서 고독과 절망을 떨쳐버린 마샤의 선택이 마샤 자신의 마지막 길은 물론, 그녀와 함께한 일곱 노인들의 노년을 빛나게 했다.

늙고 죽어가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떻게’ 늙고 죽어갈 것인가는 결국 나 자신의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치어리딩 클럽>은 명확히 한다. 죽어가는 과정조차도 여전히 삶의 한 부분임을, 아직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영화는 묻는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어떻게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것인가를. 당신은 어떻게 죽어가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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