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겨레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이 자사 지면에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비대면 예배 거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복권 등의 의견광고가 실린 것에 대해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겨레는 2015년 박근혜 정부 국정교과서 광고 논란 이후 광고게재준칙을 마련하고 광고심의위원회를 두었으나 심의위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한겨레는 최근 몇몇 의견광고로 안팎에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달 27일 개신교계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기도회 광고, 28일 기독교 단체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비대면 예배 규탄 광고,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복권 요구 광고 등이다. 특히 31일 의견광고의 경우 광고 주체가 '한겨레 독자'라고만 돼 있어 명확하지 않았다.

지난달 말 게재된 한겨레 지면 의견광고 갈무리. 왼쪽부터 31일 전면광고, 27일·28일 하단 광고.

이 실장은 9일 '말 거는 한겨레' 코너 <박근혜 사면하라는 의견광고>에서 우선 해당 광고들을 본 독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지난 달 31일 광고를 본 과천의 한 독자는 "며칠 전 교회광고가 실렸을 때, '한겨레가 어려워 그랬겠지' 이해를 했다. 그러나 이 광고는 한겨레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했다. 다른 독자는 "독자의 의견에 너무 반하는 내용임을 알고도, 한겨레 독자라는 말로 광고를 내보낸 게 화가 난다"고 했다. 성소수자 자녀를 두었다는 한겨레주주 독자는 "광고와 신문의 논조가 같이 같 수 없다해도 소수의 극단적 의견을 대변한 광고를 실은 데 대해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실장은 "광고도 중요한 정보이다. 특히 의견광고는 ‘목소리 작은’ 구성원이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통로이기도 하다"면서 "다만 의견광고는 원칙을 갖고 신중히 다루지 않으면 게재한 매체의 신뢰를 깎아 내린다. 이른바 ‘조·중·동’ 3개 보수신문이 ‘8·15 광화문집회’ 광고를 한 달간 각각 10~15회씩 싣고, 방역 당국을 비난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의견문까지 받아줘 언론시민단체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은 게 며칠 전"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한겨레의 의견광고 게재 기준을 설명했다. 한겨레에는 2016년부터 시행한 '광고게재준칙'이 있다. 준칙은 ▲공적 사안 등에 대한 의견광고는 본지의 논조와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원칙에 따른다 ▲구체적으로 광고주를 명확히 해야 한다 ▲광고 내용이 사실인지 광고주에게 입증을 요구할 수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광고·차별적인 표현의 광고 등은 거절한다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광고국의 자체 판단이 어려울 경우 편집인·광고이사·논설실장·편집국장·전략기획실장 등 5인으로 구성된 광고심의위원회를 열어 결정토록 한다.

이 같은 장치는 2015년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홍보광고를 게재해 논란을 겪으면서 내부 토론을 통해 마련됐다. 당시 한겨레 독자들의 절독운동이 일었고, 내부에서는 비판 성명이 게재됐다. 한겨레는 내부 토론회를 개최하고 의견광고 게재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했다. 같은 해 이뤄진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 "불법집회, 폭력시위는 법칙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의견광고가 28개 신문에 게재됐을 때, 한겨레는 이 광고를 싣지 않았다.

한겨레 9월 9일 <[말 거는 한겨레] 박근혜 사면하라는 의견광고>

문제는 이후 내부 장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하지만 광고심의위원회는 준칙 제정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준칙 자체가 한겨레가 의견광고를 놓고 내부진통을 겪은 결과물이었지만 ‘조직의 기억력’은 오래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 실장은 "(2015년)당시 대표이사는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 '민주적 개혁을 앞서서 주장하되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의 움직임도 공정하게 소개는 해주는 것. 저희는 그것이 기사와 광고에서 공통으로 견지해야 할 언론의 원칙이라고 봤습니다'고 밝혔다"면서 "기사와 광고는 엄연히 다르다는 해명이었으나, 며칠 뒤 9개 신문에 집행된 교육부 2차 광고는 '지면에 여유가 없다'는 '어색한' 이유로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 실장은 "이런 과정을 돌아볼 때 민감한 의견광고는 원칙을 대입해서 답이 나오지 않고, 사안별로 맥락을 고려해 판단할 문제임을 알게 된다"며 "기사에서 그러하듯 광고의 내용을 편집·경영의 책임자들이 신중히 검토하는 것은 결과와 관계없이 언론이 독자에게 좀 더 책임지는 일 처리 일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광고심의위를 가동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실장은 "2일 회사는 구성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지난달 말에 나간 3건의 의견광고는 '게재 여부의 사전 심의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었지만 그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며 "특히 '31일치는 광고 주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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