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원불교 교무] 메두사를 닮은 COVID-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누비며 모든 이들의 일상을 돌덩이로 만들었다. 텅 빈 가게, 한적한 거리, 마스크 위로 빼꼼히 드러난 사람들의 눈 밑에 그늘이 짙어간다. 체온을 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부쩍 늘었다. 손세정제로 꼼꼼히 손을 닦아내는 습관이 절로 몸에 배어간다.

어려움은 종교라 해서 다르지 않아 방역지침을 최대한 지키며 근근이 유지해 온 법회도 최근 문을 내렸다. 대안으로 유튜브나 줌을 활용한 온라인 법회를 늘린다고는 하나, 디지털 기기 사용이 벅찬 다수의 어르신들에게는 이마저도 높은 문턱이다.

교도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기부금도 많이 줄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부처님 말씀에 귀 기울이다 다함께 성가를 부르던 어제나 정겨운 벗과 공양간에 둘러앉아 같이 웃고 이야기하며 여럿이 밥 먹던 옛 추억에 잠긴들 쪼그라든 교당 살림살이가 나아지진 않는다.

가난을 벗 삼아 구름처럼 물처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아니하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무소유의 수행 길을 걷는 단출한 구도자라 할지라도 도반들과 더불어 정진하며 몸담아 온 교단에 닥친 곤란은 나의 아픔이요, 외면할 수 없는 책임이 된다.

배추 모종 심는 모습

씀씀이를 줄인다고는 하지만 건물을 유지하고 먹거리를 마련하는 등 기본적으로 치러야하는 고정비용이 늘 발생하기에 언제까지 갈지 모를 전염병 시대에 아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렇다고 재가교도들에게 의지하는 수익구조를 바꾸는 일은 단기간에 해낼 수 없는 과제다.

유례 없이 긴 장마가 지나자 곧 무더위가 시작됐다. 젖은 대지에 뜨거운 햇살이 겹쳐 일으키는 덥고 습한 기운에 몸이 쉽사리 지쳤다. 이어 찾아온 태풍 마이삭은 다시금 폭우를 퍼붓고 스쳐갔다.

계속되는 궂은 날씨와 연초부터 지속된 감염병 확산에 따른 스트레스로 시민들의 정신이 사납거나 말거나 아랑곳없이,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어느새 색바람이 불어 선뜻해 김장배추 심굴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거름 뿌린 밭을 로터리 친 뒤 이랑을 만들어 멀칭비닐을 씌운 다음 여럿이 달려들어 배추 모종을 심고 나서 마르지 않도록 일일이 물을 줬다. 그러나 밤새 고라니들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쓸쓸했다. 큰 교무님께서 급하게 아침 일찍 운봉에서 구해온 배추 모종을 하나하나 다시 묻어주는 동시에 밭 둘레에 쇠파이프를 박고 망을 쳐 단도리한다.

도량에 돌아와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파, 호박, 두부를 썰어 넣고 끓여낸 소박한 토장국에 밥을 말아 허기를 달랜 후 야외 평상 위에 친 모기장 텐트 안에 다구를 차려 빛깔 고운 황차를 우리며 풀벌레 소리 깊어가는 가을밤을 맞이한다. 달을 따라 별도 빛난다.

차 한 모금에 몸은 다습고 마음에는 여유가 깃든다. 비록 버겁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네 앉은자리가 본래 꽃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조용히 앉아서
반쯤 차를 달이니
향기가 비로소 들리고
마시고 나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 추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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