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박근혜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이라는 판결에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정권 수호 대법원' 등의 꼬리표를 붙이며 사법부 비판에 나섰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이 상위법과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가치에 위배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주요 언론 대다수는 '바로잡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에 대해 노조에 해직자가 가입했다고 법외노조를 통보하는 것은 위법하다며 파기환송을 결정,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4년 넘도록 계류된 상태였다.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는 2013년 10월 24일 당시 조합원 6만여명 전교조에 해직자 9명이 소속돼 있다는 이유로 사무실로 법외노조임을 통보하는 팩스를 보냈다. 법외노조가 되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문건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과 관련한 재판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2014년 12월 3일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재판을 검토하는 대외비 문건을 작성했다. 2014년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이 전교조가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자 당시 이에 불복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법원행정처는 문건에 “재항고 인용 결정→양측(청와대·대법원)에 윈윈의 결과가 될 것임"이라는 문구를 담았다. 청와대가 이 사안을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부 장관의 재항고를 인용하는 것은 상고법원 입법을 추진 중인 사법부에 긍정적이라는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처분 근거는 노조법 2조4항(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아니한다),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시정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노조법에 의한 노조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노조법은 법외노조 통보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이를 시행령에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도 않다"며 시행령에 기초한 통보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노동3권 중 단결권은 결사의 자유가 근로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것으로 '국가에 의한 자유'가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보다 강조돼야 한다"며 "법령의 집행과 해석에 있어서도 단결권의 본질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9월 4일 조선·중앙·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4일 조선일보는 사설 <정권 수호 대법원 이번엔 '법 창조'해 전교조 편들기>에서 "판결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법리는 물론이고 상식과 사회 현실에도 맞아야 한다"며 "다른 노조들이 해직자나 외부인들을 노조에 무더기 가입시켜 합법 지위를 달라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가"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대법원은 앞서 전교조가 낸 시정 명령 취소 소송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도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한 법률이 합헌이라고 했다"며 "그동안 달라진 것이라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전교조 손을 들어주려고 작정하고 '법 기술'을 부렸다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이 법을 해석하지 않고 스스로 법을 창조하고 있다"는 대법원 소수의견(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을 덧붙였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사설 <기울어진 대법원, 이번엔 전교조 법외노조 벗겨줬다>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사법부가 기교적인 논리를 동원해 무리하게 해결하려 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설립된 노조가 노동조합법에 명백히 반하는 일을 해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라고 단정했다.

중앙일보는 기사<진보로 기운 '김명수의 대법'… 5년전 헌재 결정도 뒤집었다>에서 "이날 판결은 수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대법원의 진보적 색채가 한층 뚜렷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대법원은 이미 국정농단, 이재명 경기도지사,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과 관련된 사안에서 잇따라 진보 쪽이 환영할 만한 쪽으로 원심을 속속 뒤집어 왔다"고 보도했다. 이어 "법리적 판단보다 다른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결과가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입장을 덧붙였다.

조선일보 9월 4일 사설 <정권 수호 대법원 이번엔 '법 창조'해 전교조 편들기>

반면 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한겨레 등에서는 헌법가치에 부합하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기본권인 노동3권 보장을 위해 노조 지위와 활동은 최대한 보호ᆞ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며 "이미 설립된 노조의 법적 지위와 권리 박탈 행위는 법률로서 요건과 절차 등을 엄격히 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정부의 임의처분 등 권한 남용을 차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총평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9명의 해직 교원이 있다는 이유로 6만여명의 회원이 소속한 전교조에 팩스 한 통을 보내 법외노조로 전락시킨 것은 당시에도 다소 무리라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며 "대법원이 지적한 법적 문제를 고용노동부와 국회는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법외노조를 통보한 것에 맞서 전교조가 취소 소송을 낸 지 7년만에 내려진 판단이다. 그 7년은 노동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하는 행정처분을 바로잡는 데 걸린 우여곡절의 시간이기도 하다"면서 시행령에 근거한 이 같은 처분은 위법이라는 판결에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을 바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보수정권이 사소한 문제를 꼬투리 잡아 전교조를 법외노조 처분한 것 자체가 '전교조 손보기'였다"며 "늦게나마 사법부가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아 다행"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을 이에 더해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직권 취소'를 미뤄온 것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관련 기사에서 "고용노동부는 그간에도 행정조치인 ‘법외노조’ 통보를 스스로 취소할 수 있었지만, 입법을 통한 법 개정이나 사법부 판단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현 정부 들어 이전 정부의 잘못된 노동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역시 노동부 장관에게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고 권고했지만, 김영주 당시 노동부 장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령상 문제가 되는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폈다"고 전했다. 2018년 당시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MBC라디오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 수차례 만나 직권 취소를 통한 문제해결 약속을 받았으나, 청와대의 입장이 점차 변해갔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중앙일보 2015년 5월 29일 사설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보수언론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헌법재판소의 법외노조 통보 '합헌' 결정이다. 당시에도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전교조가 이념편향적 투쟁에만 몰두한 결과라며 거들었다. 헌법재판소의 법률에 대한 판단을 두고 정치적 해석을 통해 특정집단의 '이념편향'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 타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구시대적이고 국제사회 기준에 맞지 않는 노조법과 헌법재판소 결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노조 자주성 원칙은 노조 스스로가 세울 수 있게 한다는 게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가치와 국제사회 기준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이뤄졌다. 무엇보다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은 교원노조의 법률상 지위 박탈 적절성 여부는 '법원 판단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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