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의 대표 더비(Derby)하면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수도권 더비'를 떠올립니다. 서로 다른 연고를 두고 있으면서 실력도 엇비슷하고, 무엇보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 자연스럽게 더비 관계를 형성, 언제나 구름 관중을 몰고 오는 '최고의 더비 매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물론 K리그 클래식 더비라 할 수 있는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현대 간 대결, 주요 대회마다 우승을 놓고 겨뤘던 '마계대전' 수원 삼성과 성남 일화 간 대결, 호남 더비인 전북 현대와 전남 드래곤즈 간 대결 등도 K리그에서 꽤 익숙해진 더비 매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화끈한 실력과 충성도 높은 팬들의 장외 대결까지 모든 흥행 요소를 갖춘 수도권 더비만 한 더비 매치는 없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도권 더비'에 버금갈 수 있는 흥미진진한 '예비 더비 매치'가 앞으로 큰 주목을 받을 듯합니다. 바로 호남을 대표하는 전북 현대와 영남을 대표하는 포항 스틸러스 간 맞대결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동안 이 두 팀의 대결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 리그 수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대결을 벌여 잇달아 명승부를 펼쳐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른바 진짜 영호남 더비가 탄생한 셈입니다. 이 두 팀의 전력이 당분간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수도권 더비만큼이나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더비 매치'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포항 스틸러스, 전북 현대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일단 이 두 팀의 사이에 있는 이야깃거리가 하나 존재하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바로 전북 현대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동국은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포항에서만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포항의 대표적인 프렌차이즈 스타였습니다. 혜성같이 등장해 팀내 주축 공격수로 자리매김하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광주 상무에서 잠시 활약하다 다시 돌아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든 곳이 포항 스틸러스였습니다. 이동국에게 포항은 축구 인생의 출발점이자 고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무대 진출 실패 후 잠시 방황하던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9년 전북 현대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보란 듯이 새 둥지를 튼 첫 해에 득점왕을 차지하고 생애 첫 K리그 우승과 최우수선수 타이트틀을 모두 거머쥐며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첫 발을 내딛은 곳이 포항 스틸러스였다면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모든 꿈을 이뤄낸 곳은 바로 전북 현대였습니다. 포항에서 내쫓기거나 포항과 전북, 두 팀 간의 직접적인 마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K리그 최고 공격수의 꿈이 실현됐던 팀이었다는 점에서 '이동국'이라는 매개체 하나만으로 두 팀의 연결고리는 생긴 셈이 됐습니다.

여기에 두 팀은 2000년대 중후반 들어 비슷한 행보를 이어가며 K리그 대표 구단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서서히 주목 받았습니다. 전북 현대는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K리그 최초로 리그 개편 뒤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2009년 팀 창단 후 첫 K리그 우승까지 이뤄냈습니다. 이에 질세라 포항 스틸러스도 2007년 K리그, 2008년 FA컵,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와 컵대회를 잇달아 제패하며 K리그 최고(古) 명문구단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닥치고 공격'을 뜻하는 '닥공축구' 모토에 걸맞게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전북 현대, 가장 짜임새 있는 미드필드진 운영으로 아기자기한 맛의 공격력을 보유한 포항 스틸러스 모두 기본적으로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실력 면에서 대등하게 균형을 이루고, 이동국이라는 매개체가 더해지면서 두 팀의 대결은 조금씩 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두 팀의 명승부는 지난 5월 15일, 리그 10라운드에서 펼쳐졌습니다. 당시 경기에서 양 팀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후반 33분, 슈바의 패널티킥 결승골로 3-2 펠레스코어로 포항 스틸러스가 승리를 거두고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스코어만큼이나 양 팀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치열한 명승부를 펼치며 '명품 경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지난 21일, 장소를 옮겨 전북 현대가 이동국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1 승리를 거두고 10라운드 패배를 설욕했습니다. 전 경기 패배에 대한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 전북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경기를 했고, 포항은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역시 탄탄한 경기력을 펼치며 또 한 번 치열한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후반 18분에 나온 패널티킥 상황에 포항 신광훈이 퇴장을 당하면서 분위기는 급격하게 전북 쪽으로 흘러갔고, 한동안 골을 터트리지 못했던 이동국은 이 골을 시작으로 친정팀을 상대해 3골을 폭발시키며 골 가뭄을 말끔하게 해결했습니다. 치열한 대결을 펼쳐 1승씩 나눠 가진 양 팀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일단 올 시즌 두 차례 승부를 멋지게 장식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두 팀이 1,2위 자리를 그대로 지켜내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는다면 K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영남과 호남 연고 팀 간 대결이 펼쳐지게 됩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축구에서 재미있게 즐겨볼 수 있는 구도가 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계기를 바탕으로 두 팀이 라이벌 의식을 갖고, 강한 승부욕을 바탕으로 오랜 역사에서 길이 남을 만한 명승부를 지금처럼 계속 해서 펼쳐준다면 몇 년 뒤에는 '영호남 더비'가 자연스럽게 갖춰질 공산이 큽니다. K리그에서 목말랐던 '큰 더비 매치'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더비 매치는 리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더없이 좋은 요소로 꼽히곤 합니다. 선수, 코칭스태프 뿐 아니라 팬, 구단 전체적으로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해야 역사와 스토리가 생산되고 나아가 리그 전체에 활력이 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되는 팀에게도 이는 건전한 경쟁 관계를 형성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K리그 팀 가운데 가장 화끈한 팀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전북 현대, 포항 스틸러스 간 대결은 앞으로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더욱 흥미진진한 대결을 통해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매치로 꼭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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