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디어정책 전반을 손 볼 사회적 논의기구인 '미디어혁신위원회'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미적거리고 있다고 질책했다. 방통위가 기구 설치 필요성에 대한 원론적인 공감을 표할 뿐, 이를 위한 협의체 구성이나 내부 논의 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당·정·청 협의를 바탕으로 사회 각 주체의 의견을 모아내야 하는 사회적 논의기구 속성 상 논의 촉발과 조율 역할 상당부분을 수행해야 할 여당에 이목이 쏠려있는 상황이다. 미디어혁신위 주요 의제 중 하나는 미디어 관련 부처의 권한 분산·중첩 해소로 정부조직 간 권한갈등 조정 작업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여당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공약으로 미디어혁신위 설치·운영을 제시한 바 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정필모 의원실, 연합뉴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정 의원은 31일 <"미디어혁신위 구성, 방통위는 미적미적">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미디어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검토를 약속했지만, ‘미디어혁신위(가칭)’설치 이행을 위한 구체적 노력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정 의원은 지난 25일 방통위로부터 '미디어 개혁기구 관련 향후 계획'을 제출받은 결과, 방통위가 미디어혁신위 추진 관련 업무를 전혀 하지 않고, 필요성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 의원은 지난달 20일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미디어혁신위 설치를 제안했고, 한상혁 위원장은 공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한 달여 뒤 방통위가 제출한 계획에는 미디어혁신위 설치를 위한 협의체 구성이나 내부회의조차 없었다는 게 정 의원 지적이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방통위는 "5기 방통위의 비전과 정책과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디어 개혁기구 관련 사항 포함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미디어 개혁기구 구성·운영과 관련해 별도의 공식 협의체 등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으며, 필요 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방통위원장이 청문회에서 미디어 혁신기구 필요성을 인정한 다음에도 현장 의견수렴을 위한 협의체 구성은 물론 내부 회의조차 실시한 적이 없다는 것은 미디어 개혁 기구 구성에 대한 방통위 의지를 의심케 한다"면서 "또다시 미디어 정책이 장기간 표류한다면 현실과 법제의 부조화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부담이 가중되고 국내 산업은 서서히 침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의원은 "방통위는 원칙적인 발언 수준에서 벗어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의 기구 마련은 물론 과제 선정과 실천 과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7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화를 위한 미디어 정책 발표'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방통위는 물론 민주당 안팎에서는 방통위 역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내부적으로는 지난 3월 방송정책국에서 연구반을 통해 발표한 것이 있고, 시민사회에서 발표한 관련 자료들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방통위는 중장기 방송제도개선 추진반을 통해 방송‧통신 융합환경에 따른 미래지향적 규제체계 정비와 의제설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추진반을 통해 정책제안서가 방통위에 접수됐다. 현재 '미디어정책 방안 세부안' 수립을 위한 연구반이 가동 중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시민단체 연대체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는 지난달 미디어정책 보고서를 내놨다.

방통위 관계자는 "5기 방통위가 구성돼 위원 간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며 "미디어혁신위의 주제나 범위가 방통위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그런 부분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 정책은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정부부처로 권한이 분산·중첩돼 있는 형국이다. 또한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 논의과정을 설명하면서 미디어혁신위 논의와 관련한 당의 역할을 강조했다. 1998년 당시 케이블, 위성 등이 등장하면서 달라진 방송환경에 맞게 제도를 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일었고,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논의기구인 방개위 설치 제안이 나왔다. 그해 12월 사회 각계 인사들과 정부, 국회가 참여한 방개위가 꾸려졌고 2000년 방송법이 제정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특성상 당의 역할을 통해 당정청 협의를 이끌어내고 학계, 시민사회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미디어혁신위를 출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올 하반기 민주당 내 검토를 마친 후 늦어도 내년 1월까지 미디어혁신위를 출범시킨다는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21대 총선 공약으로 미디어혁신기구 설치·운영을 제시했다. 미디어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국회, 정부 관련 기관 등이 참여하는 한시적 미디어혁신기구를 설치해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연장선상에서 민주당은 미디어정책 관련 부처가 분산돼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부재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부처별 미디어정책 부서를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각 부처별로 나누어져 있는 미디어 콘텐츠 관련 법률을 통합, 단일 미디어콘텐츠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23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에서 이낙연 국난극복위원장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총선공약 정책집을 건네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관석 정책위 수석부의장, 이인영 원내대표, 이낙연 국난극복위원장, 조정식 정책위의장. (사진=연합뉴스)

한 학계 인사는 "과거 방개위, 융추위(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의 사례를 보면 방송위원회 등에서 먼저 치고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행정부에 왜 안하느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정부조직개편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 간단치 않다"고 했다.

이 인사는 "방송통신 분야를 하나의 정부 행정기구가 끌고 나간다면 거기에 혁신위를 설치하면 되겠지만, 지금은 모든 사안에 과기정통부, 문체부 등과 일이 겹쳐져 있다"며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이를 논의할 수 있는 단위는 여당이다. 현재 OTT와 관련해서도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체부 등이 다 뛰어들고 있다. 서로 긴밀하게 협의해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미디어혁신위는 저희(국회)도 논의를 하고 있지만 실무부서가 되는 건 방통위이다. 사회적 논의기구의 상을 어떻게 두고, 어떤 과제들을 해결할 것인지 등을 방통위가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방통위가 이런 검토를 바탕으로 정기국회에서 상의를 해야하는데 구체적인 고민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방통위가 논의를 주도적으로 활발하게 해야한다고 촉구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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