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LG가 무기력한 경기 끝에 두산에 패배하자 분노한 LG팬들이 대구로 원정 떠나는 구단 버스를 막아섰습니다. 8월 14일 롯데전에서 패배한 후 팬들이 자정까지 남아 박종훈 감독 및 선수들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무시한 바 있습니다. 이번 경기 패배로 4위 롯데와의 승차가 4.5로 벌어지며 9년 만의 4강 진출이 사실상 좌절되자 LG팬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일부에서는 LG팬들의 열성이 도에 지나친 것이 성적 부진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재작년에는 LG 코칭스태프 및 선수 차량에 메모된 휴대 전화 번호를 악용해 욕설 문자를 보낸 사건이 발생한 바 있었고, 최근에는 팬들의 극성으로 인해 LG가 부진하다는 요지의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게재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가 성적에 대한 압박과 부담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훌륭한 성적에는 갈채와 환호, 그리고 거액 연봉이라는 보상이 뒤따르며 부진한 성적에는 질타와 냉대, 그리고 연봉 삭감이라는 불이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성적이 좋을 때만 갈채와 환호, 거액 연봉 등 달콤한 열매를 취하고 성적이 부진할 때 따르는 질타와 냉대, 그리고 연봉 삭감을 피하려한다는 것은 극히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 무기력한 패배가 일상화된 LG 선수단
국내 프로야구는 모기업의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구조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여하튼 한국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모두 모기업의 홍보를 위해 전국을 돌며 경기를 하고 TV와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진한 성적은 매년 수백억을 프로야구단에 쏟아 붓는 모기업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프로야구단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모기업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이것이 기업의 상품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는 인과 관계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즉 프로야구 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팬들이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팬들의 관심과 환호, 혹은 질타야말로 연봉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프로야구 선수들은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타 팀 팬들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LG팬들만 극성스러운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다년 간 하위권을 헤매던 타 팀의 경우 경기 중에 관중이 난입한 사건도 있었고 한 경기에 채 100명도 입장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올 시즌에도 팀 성적이 부진하자 무관중 운동이 추진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LG는 8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중 관중 난입이나 무관중 운동이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작년에도 일찌감치 가을 야구 티켓을 날렸지만 100만 관중을 돌파했습니다.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유니폼에만 집중하는’ 대다수의 LG팬들을, 욕설 문자 사건의 피의자와 같은 극히 일부의 극렬한 팬과 다르지 않다고 치부하는 일반화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미국와 일본의 대도시의 인기 팀들 역시 열성적인 팬들이 적지 않습니다. 메이저 리그의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일본 프로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즈의 팬들의 열성은 결코 LG팬들에 뒤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메이저 리그에서는 자신의 홈팀 선수가 부진할 경우 가차 없이 관중들이 집단적으로 야유를 퍼붓기도 합니다. 응원단이 커다란 볼륨으로 앰프를 틀어 선수들에게 관중의 육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LG팬들의 성원과 열성도 부담스러운 LG 선수들이 뉴 양키 스타디움이나 펜웨이 파크에 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어젯밤 분노한 팬들 앞에 선 주장 박용택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밝혔습니다. 프로 10년차로 팀을 이끄는 주장이 팬들에 대해 ‘부담’ 운운한 것을 보면 열성적인 LG팬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팬들의 성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약한 정신력을 보유한 LG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도록 LG팬들이 응원하지 않고 관심을 끊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진정 무관중 운동이라는 팬들의 배려가 필요한 팀은 온실 속의 선인장 LG 트윈스인 듯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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