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의 트레이드마크 달콤살벌이 제대로 먹히고 있는 중이다. 또한 로열패밀리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덜어내고 다소 찌질하고 한편으로 귀여운 재벌3세로 변신한 지성의 모성 자극 연기도 잘 통하고 있다. 거기다가 왕지혜까지도 망가짐을 두려워 않는 몰입을 보여 보스를 지켜라는 버릴 것 없는 깨알 같은 웃음을 제공하고 있다. 이쯤 되면 수목드라마 인기경쟁에서 독주할 자격은 충분하다. 다만 계유정난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공주의 남자의 파괴력과 맞붙은 이번 주는 그 힘을 다 발휘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무슨 드라마가 보는 내내 웃게 만드는데도 차츰 불만이 생길 때가 됐다. 명색이 로맨틱 코미디인데 로맨스 없이 코미디로만 가는 것이 불안스럽기도 하다. 물론 5회 엔딩을 짜릿하게 장식했던 더블 키스 장면은 예상치 못한 연출이어서 이제 서서히 코미디를 줄이고 로맨스로 달리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키스는 로맨스로의 급격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은설에게 키스한 지헌은 겨우 폭행을 면했고, 나연에게 키스한 무원은 쿨하게 차이고 말았다. 과거 드라마라면 이후 폭음하는 장면으로 이어졌을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심각함을 거부하는 로맨틱 코미디 보스를 지켜라는 주저 없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쿨한 보스를 지켜라도 버리지 못한 것은 역시나 한국 드라마의 정석 3각관계, 4각관계의 스릴이다. 또한 아직까지는 노은설이 거부하고는 있지만 어차피 신데렐라 콤플렉스 역시 버리지 못할 것이다.

재벌 대 비서의 구도에서 건질 결말이 신데렐라 대신 재벌의 몰락은 아닐 테니 어쩔 수 없다. 그 대신 보스를 지켜라가 좀 남다른 것은 신데렐라 비틀기에 꽤나 성공한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드라마 타이틀은 보스를 지켜라지만 사실은 재벌 3세 사촌 형제의 비서를 지켜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지헌에게는 벌써부터 은설이 비서가 아닌 여자로 머리에 박혀버렸지만 무원 역시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연에게 키스를 하고 프로포즈를 한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마지막 도박의 의미였다. 나연이 받아주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룹을 승계하기 위한 야망의 화신으로 계속 살아가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에 쓸려 키스는 하게 됐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거절하자 무원은 자신이 던진 마지막 주사위의 결과에 씁쓸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결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결심은 바로 노은설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이후 무원이 은설에게 나직하고 달콤한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 여자라면 상대가 비록 재벌 3세가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완벽한 공략이었다. 은설은 나연의 엄마, 무원의 엄마의 잇따른 방문을 받는다. 파파라치에 찍힌 무원과의 밤 데이트 장면을 추궁 받는다. 이 역시 과거 드라마 같았으면 돈봉투가 나오고, 여주인공은 우는 장면이었겠지만 보스를 지켜라는 참 다행스럽게도 그런 구태의연함만은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 어쨌거나 지헌의 할머니까지 찾아오는 3단공세에 지친 은설에게 무원이 찾는다.

은설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부모들의 설레발을 끊어내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오히려 엄청난 반격을 받게 된다. 바로 차무원이 카사노바도 흉내 내지 못할 달콤한 말로 프로포즈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모님들이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고 은설이 무원에게 당연히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자 무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그것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해가 아니라면요. 내가 무느님이라고요? 노은설씨에게. 싫어요. 내려주세요. 사람으로. 나, 노은설씨한테 남자로 다가가게...”

시쳇말로 오그라들만한 닭살 멘트도 없이 무원은 은설의 의표를 찌르며 성공 100%의 기습 프로포즈를 단행했다. 아직 그에 대한 은설의 반응은 다음 주로 미뤄졌지만 일단 당장은 거절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은설은 직속 보스 차지헌과 자신이 든든한 빽으로 믿어왔던 무원의 애정공세 사이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를 일만 남았다. 지성의 귀여움과 김재중의 달콤함이 벌일 치열한 대결 또한 흥미롭다. 그렇지만 아직 무원의 진심을 확신하기에는 이르다.

은설에 대한 호감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프로포즈까지 급진전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이 존재할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쿨한 세대라지만 하루 전에 나연에게 차이고 다음날 프로포즈는 아무래도 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무원의 진의를 알아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갈등 부분을 맡아줄 것이다. 그래서 나연이 은설에게 어설픈 공격을 하다가 역전 당한 프로포즈 직전의 장면은 단지 코믹함만이 아닌 어떤 복선의 의미를 읽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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