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곳곳에 무상급식을 반대한다면 걸려있는 현수막들의 문구는 안쓰럽기가 우스운 수준이다. 무상급식을 일제 치하의 강제 급식에 비하는 것은 예사 수준이고, 이제는 '짠 것 정말 싫어요', '신 김치 못 먹어요'까지 등장했다. 논리를 앞세워서는 투표율 33.3%를 기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영혼을 바닥끝까지 잠식해 참을 수 없이 허접한 문장들이 여과 없이 뱉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는 어버이연합의 집회 모습ⓒ연합뉴스

정부와 한나라당이 무상급식을 반대할 때, 빠트리지 않는 설명 아니 아예 무상급식과 등치시키는 개념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상당 부분을 할애해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포퓰리즘'에 관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보며 아예 이 정당이 '포퓰리즘' 피해자 모임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포퓰리즘은 정책의 가치나 실현 가능성, 옳고 그름과 같은 본래의 목적을 넘어서 정치가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부합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을 뜻한다. 지역주의에 기반 한 한국 정치의 역사는 너나 가릴 것 없이 워낙에 모두가 포퓰리즘이었다. 이러다보니 포퓰리즘은 자칫, 스스로를 공격하는 용어가 될 소지가 높았다. 그래서 이 정권 이전에는 그렇게 인기 있던 개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권 들어 '포퓰리즘=악'이란 등식이 생겼다. 대규모 토건을 일으키려다보니 국가 재정의 형평성이나 건전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때에 시대적 요구가 '복지'로 집합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복지=포퓰리즘=악'의 등식을 만들어냈다. 조중동 등 정권 친화 매체가 이 등식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주자 이 논리는 그대로 보수의 정체성이 됐다. 그러기를 몇 년여 정부와 한나라당은 야당이 제안한 중요한 정책들에 대해서 복잡한 코멘트 없이 바로 '포퓰리즘이다'고 딱지를 붙이고 있다. 반박도 대응도 아니라 딱지만 붙이면 되니 이만큼 손쉬운 방법도 없다. 무상급식이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대부분의 복지 제안들도 그렇다.

한나라당 저출산대책특별위원회의 이름은 '아이 좋아 특위'다. 작명을 발랄하게 한 것을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이 낯간지러운 작명 역시 '포퓰리즘'의 일환일 것이다. 이 '아이 좋아 특위'의 임해규 위원장은 초산 연령을 앞당기기 위해 "27살 전에 결혼하면 주택 관련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임대주택 분양', '전세자금 융자' 등 구체적 인센티브의 내용까지 보도됐다. 간단히 정리하면 27살 이전에 결혼하면 나라에서 집도 내어주고, 은행을 통해 전세자금까지 빌려주겠단 '파격적' 내용이다.

왜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27살 전에 결혼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복잡한 함수를 곧장 '주택 제공'으로 치환하는 한나라당의 감수성은 정말 못 말리는 토건 중독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도 한 마디만 하자면,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88만원 세대>의 첫 장은 '첫 섹스의 경제학'으로 시작된다. 첫 섹스를 할 돈도 궁여지책인 이들에게 덮어놓고 결혼을 권하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상스럽다.

'27살 이전 결혼 주택 제공'을 보며 2가지 단상이 떠올랐다. 만약, 한나라당 '아이 좋아 특위'가 제안한 '27살 이전 결혼 주택 제공'이 주민투표 대상이 된다면, 그때 한나라당은 어떤 현수막을 걸까? 그리고 만약 이 정책이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시절의 정부 정책이었다면 또 어땠을까?

지금 한나라당이 내걸고 있는 현수막의 수준을 보건데, 만약 '27살 이전 결혼 주택 제공'이 주민투표 대상이 된다면 한나라당의 홍보 문구는 "북한에서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하느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무상급식이 시행된 이후라면 "밥도 공짜로 주는데 집은 왜 못주냐"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 이런 정책이 제안됐다면, "종북 정권이 북한 흉내를 낸다"고 아우성을 치며, "밥값은 세금 폭탄, 집값은 세금 핵폭탄"이라고 난리 법석을 폈을 것이다.

18대 대선에 출마했던 허경영은 '포퓰리즘'에 관한 궁극의 고수라고 할 만하다. 허경영 후보자의 공약 가운데 '결혼하면 1억, 출산하면 3천 만원'이 있었다. 한나라당이 '아이 좋아 특위'라는 이름을 지은 건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일 것이다. '27살 이전 결혼 주택 제공' 역시 대중의 요구에 부합한답시고 나온 아이디어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허경영 후보의 공약까지 베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단 대통령의 발언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무상급식이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란 현수막은 지금도 길에 펄럭이고 있다. 남의 포퓰리즘은 망국이고, 내 포퓰리즘만 애국일 순 없지 않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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