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저 또한 여태껏 본 인도영화 중에서 가장 호감을 보인 이유는, 이처럼 꽤 보편적인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 얼간이>를 보면 사교육비를 충당하느라 죽어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자식을 명문대에 진학시키려고 혈안이 됐고, 졸업한 후에는 큰소리 떵떵 칠 수 있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지상과제라고 종용하는 교육의 폐해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 때문에 지금껏 봤던 그 어떤 인도영화보다도 감정이입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정답은 "인도영화라서 가능했다"는 걸로 짧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입부에서 말했듯이 전 인도영화가 가진 특유의 낙천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 그런 인도영화를 만드는 발리우드야말로 할리우드보다 더 꿈의 공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발리우드의 영화는 일부를 제외하고 모조리 '판타지'로 묶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인도를 다녀온 후에는 이 아집이 좀 더 굳어졌지만, 이것 또한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아마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 아니 인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같은 이야기를 영화에서 다뤘다면 절대 <세 얼간이>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내 이름은 칸>이 그랬던 것처럼 <세 얼간이> 역시 정치적, 사회적, 현실적으로 올바른 혜안을 갖추거나 제시하지 못합니다. 란초라는 캐릭터만 보더라도 이른바 '맛살라 영화'라고 하는 발리우드의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 얼간이>는 분명 맛살라 영화이기 때문에 돋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초에 썼던 <내 이름은 칸>의 리뷰 제목을 그대로 빌자면, '밉지 않은 낙천주의'가 또 한번 힘을 발휘한 셈이죠.
★★★☆
덧) 아미르 칸의 나이가 40대 중반인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생을 연기한 <세 얼간이>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인도의 티비로 본 광고에서도 콧수염이 있어서 그렇지 아주 젊어 보였거든요. 하루는 아미르 칸이 꽤 젊을 적에 출연한 영화를 잠시 봤는데 그때랑 지금이랑 별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