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요즘은 접촉사고를 내놓고 뒷목부터 잡는 행태가 정치의 본질처럼 보이는 때가 많다. 씁쓸한 일이다.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돼버렸는지 모두가 함께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코로나19의 국내 대유행이 또다시 눈앞에 다가온 지금 미래통합당은 연일 정부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방역대책의 책임은 결국 정부가 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게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코로나19가 다시 유행의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정부가 소비쿠폰 살포 등을 정책을 강행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다만 정부도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역에 무게를 두면 경제가 죽고, 경제를 살리고자 하면 방역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은 세계 공통이다. 극우포퓰리스트들과 독재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방역은 잊고 경제라는 ‘실질’에 매달렸다. 코로나19의 위력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을 이어가다 정치적 위기에 몰리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증명하려다가 본인이 확진자가 된 지도자들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 중 한 명은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했는데, 본인이 하는 비상식적 행위의 본질을 정확히 설명했다고 평할 수 있다. 언젠가 없어질 사람 목숨보다는 역시 영원히 푸르른 경제적 지표가 우선인 것이다.

하여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종식되기 어려우니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생활 속 방역’이란 개념을 꺼내들었던 것도 이런 의미였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경제 활동에 있어서의 억제(?)가 가능하다면 모르겠으나,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니 방역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경기대응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이 때문에 방역에 문제가 생길 조짐이 보이면 황급히 다시 불을 꺼버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솥의 온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게 정부의 처지다. 이게 정부를 향한 모든 비판의 답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이런 사정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해 정은경 본부장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전제를 환기하면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질병관리본부 방문을 논해보자.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21일 정은경 본부장과 면담하면서 국가보건안전부 신설과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정부에 요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정부가 방역당국의 말을 듣지 않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판도 했다.

국가보건안전부 신설은 지난 총선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보건 분야를 독립시켜 독자적인 부처로 만들자는 제안의 확장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보건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게 ‘방역 실패’의 원인인지는 의문이다. 통합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방역이 정치의 수단이 됐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가보건안전부를 넘어 아예 국가보건안전기획부를 만든다 해도 정권이 ‘패싱’해버리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는 이미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과 보건복지부 복수 차관제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얼마 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런 상황에 다시 보건 담당 부처의 독립 내지는 신설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색하다는 느낌이다.

정치인이 어색한 일을 굳이 하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 전광훈 목사와 ‘아스팔트 우파’들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문제를 의식한 행보가 아닐까 한다. 전당대회 국면인 민주당은 연일 지지층 결집용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전까지 주요 레파토리는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였지만 최근 상황을 계기로 전광훈 목사 등 문제가 추가됐다. 김부겸 전 의원은 극우세력이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전광훈 목사와 미래통합당을 사실상 한몸으로 간주하고 싸잡아 비난하는 중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끊임없이 ‘방역당국’과 ‘정권’을 갈라치기 하며 ‘방역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은 이런 ‘프레임’에 대한 반격으로 볼 수 있다. 통합당이 광복절 집회 전후에 수권을 준비하는 정치세력으로서 책임있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다면 여당 일부의 이런 움직임은 통합당이 기대하는 대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합당 지도부가 “우리는 전광훈 목사 세력과 관계없다”는 수준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오히려 질본 방문과 같은 일정의 의도가 논란에 휘말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광경은 여야가 ‘피해자’ 대결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자의 주장에 의하면 민주당은 방역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불순한 동기를 가진 극우세력의 피해자이고, 통합당은 방역마저도 정치에 이용하는 정권의 피해자이다. 통합당은 민주노총 집회 참가자는 봐주면서 광복절 집회에 참가한 보수시민에만 검사를 강요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좋은 대학 나오고 사회생활도 할 만큼 한 정치인들이 정말 현실을 몰라서 이런 주장을 하는 거라고 보긴 어렵다. 가령 김부겸 전 의원은 경찰청을 산하기관으로 둔 행정안전부 장관 출신이다. 정은경 본부장의 지시를 잘 따르자고 하고 있으나 당장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지난 총선 때는 방역 당국이 선거를 의식해 검사를 축소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동조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앞의 ‘피해자-되기’는 그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걸로 볼 수밖에 없다. 접촉사고에 뒷목 잡고 차에서 내리는 거랑 똑같은 얘기다.

정치가 원래 그런 거긴 하지만, 요즘 같은 시국에는 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남에게 뭘 요구할 때에는 자기부터 희생해야 설득력이 생긴다. 지금까지의 인간사가 늘 그래왔다. 그러나 희생은커녕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에만 골몰하며 세상을 ‘다스린다’는 책임은 외면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무엇을 증명하나? 남에게 요구할 것도 없고 오직 이대로가 좋다는 것 아닐까?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이런 시국에 또 확인하게 되니 더 슬픈 기분이다. 이제 그만들하고 자기 본분을 다 하기 위한 노력으로 경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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