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정치가 개입해서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축구로 실제 지역 또는 국가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분열까지 이어진 사례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예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부가 축구협회 행정에 개입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리는 규정도 두고 있습니다. 그만큼 축구는 축구에서 끝나야 하며, 권력을 가진 자의 노리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K리그 시, 도민 구단들을 보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1년 사이에도 이런 일들은 많았습니다. 강원 FC는 대표이사 선임 문제를 놓고 정치적인 논리 때문에 구단주인 강원도지사와 이사진 간의 갈등을 벌여 한 달째 대표이사 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습니다. 팀을 운영하는 최고 경영자가 없으니 강원 선수들은 더욱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며 사실상 한 시즌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를 8년간 이끈 안종복 사장이 내적으로 정치적 입김에 의해 물러나면서 문제가 된 바 있으며, 대전 시티즌, 광주 FC 등 재정이 탄탄하지 못한 다른 시민 구단 역시 정치 논리에 의해 몇몇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끊임없이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임은주(45) 을지대 여가디자인학과 교수가 3일 강원FC의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강원도개발공사에서 열린 이사회가 끝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강원FC는 구단주인 최문순 강원지사가 추천한 임 교수와 남종현(67) ㈜그래미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임 교수는 국내 1호 여성 국제 축구심판으로 유명하며 지난 3월 을지대 교수로 임용됐었다.ⓒ연합뉴스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싼 강원 FC의 갈등은 여러모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구단주인 최문순 도지사는 오래 전부터 여자 축구 심판으로 유명한 임은주씨를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하려 했지만, 도지사의 '입김'에 의한 '코드 인사'인데다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맡아서 되겠느냐는 이사진, 다수 팬들의 의견 때문에 한 달째 성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행정력은 거의 올스톱 상태이며, 선수단 분위기도 어수선해 성적 부진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라며 감독, 대표이사가 줄줄이 물러난 마당에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강원 FC의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강원 지역 모 언론 사설에 따르면 강원 FC는 출범 초기 모은 자본금 90억 원이 거의 빠져나가 이제 18억 원밖에 남지 않았으며, 이것이 해결되지 못할 경우 3개월 뒤 구단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관측된다고 밝혔습니다. 스폰서 유치, 적극적인 마케팅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컨트롤할 대표이사가 없다보니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느 팀보다 적극적인 팬들을 보유해 명문 구단으로서의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던 강원 FC의 '끝없는 추락'은 결국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비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보다 4개월 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정치 외풍에 의해 임기가 남아있던 안종복 사장이 갑자기 물러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단발전을 위해 물러났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인천시장 이 교체되면서 안 사장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고, 인천시와 보이지 않는 갈등 양상을 보이자 결국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시민구단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구단으로 거듭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안 사장이 물러난 데에 정치 논리가 개입됐다는 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인천 내부 분위기도 한동안 어수선했습니다. 최근에는 홈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숭의 아레나 공사가 지연됐는데 여기에도 정치적인 논리 때문에 경기장이 위치한 남구청 측이 허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최초 시민구단인 대전 시티즌 역시 정치 논리 때문에 한동안 폭풍을 겪기도 했습니다. 승부조작 사태에 대전 선수들이 대거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쇄신 차원에서 사장단, 코칭스태프가 모두 물러났지만 구단주인 대전시장이 신임 사장으로 선거 때 도움을 준 측근을 자리에 앉혀 논란이 됐습니다. 이전부터 대전은 시장의 최측근이 사장 자리에 올라 틈날 때마다 많은 문제가 났는데 이번에도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팬들의 실망감은 컸습니다. 유상철 감독을 선임한 뒤, 그나마 조금 분위기가 수습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유상철 감독에 사장이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제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전시장 측은 정치적인 논리보다 강한 리더십이 필요해서 이번 사장을 선임했다고 밝혔지만 축구를 잘 모르는 인물이 또다시 사장 자리에 앉아 과연 이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는 남아있습니다.

그밖에 경남 FC도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한동안 정치 논리 때문에 사장단, 코칭스태프 교체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올해부터 K리그에 참가하는 광주 FC 역시 광주시장의 측근이 단장직에 앉아 채용 비리에 휩싸이는 등 알게 모르게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K리그 시민 구단들이 정치권력, 논리에 운명이 좌우될 만큼 휘청거리는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지방자치단체 의존도가 절반 이상이나 될 정도로 높은 구조 때문입니다. 팀이 운영되려면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그에 따라 시장 또는 도지사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 운영권을 갖게 됩니다. 구단주가 지방자치단체장인 특성상 정권이 교체되면 그 사람에 맞는 '코드 인사'가 단행될 수밖에 없고, 때에 따라서는 모든 직원이 바뀌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연히 전문적으로 알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고 있고, 시, 도민 구단은 이렇게 오히려 뒷걸음만 치고 있습니다. 많지도 않은 돈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시민구단 선수들도 있지만 이를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고 그저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정치는 정치에서만 존재해야 하고, 축구는 축구에서만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발전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부르짖으면서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자리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시아 최고라고 여기는 한국 축구에 '기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시, 도민 구단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즉 정치 논리를 배제시키고 신선하게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더욱 비참해질지 모릅니다. 피해는 경기를 뛰는 선수, 코칭스태프 등 힘없는 축구인들과 돈 내고 경기장을 찾아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논리에 모든 것이 좌우되는 이런 관행, 악습이 사라질 때까지 축구계가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는 승강제 도입이라는 대변혁기를 앞둔 시점에서 시,도민 구단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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