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감독은 지난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한 외국인 감독을 대신해 임명되었습니다. 전임 외국인 감독은 다년 간 하위권에서 헤매던 팀을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켰지만 매년 준 플레이오프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는 이유로 팬들의 재계약 촉구 운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A감독이 부임한 팀은 프로야구 8개 구단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 열성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A감독은 팀의 연고지에서 ‘우리 감독님’이라는 호칭에 감격하며 전임 감독의 업적을 넘는 ‘우승’ 목표를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감독 출신 A감독의 2011 시즌은 출발부터 험난했습니다. 개막 한 달 동안 23경기에서 7승 2무 14패의 부진한 성적에 그친 것입니다. 5월에는 23경기에서 14승을 거두며 부활하는 듯하더니 6월에는 다시 8승 14패로 침체에 빠졌습니다.

A감독은 작년까지 호쾌한 타격을 보인 지명타자를 좌익수로, 퓨처스 올스타전 MVP 출신의 중견수를 3루수로 전업시켰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A감독이 전임 외국인 감독의 색채를 지우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평도 적지 않았습니다.

투수진 운용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베테랑 외국인 투수를 특별한 고정 보직도 없이 연투 혹사를 시키다 부진하자 퇴출시켰습니다. 1년 전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트레이드해온 젊은 투수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다 부진에 빠졌습니다. A감독은 마무리 투수만큼은 내국인 선수가 해야 한다는 지론을 내세웠지만 젊은 투수의 잦은 보직 변경은 독이 되었습니다.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A감독으로 인해 팀이 하위권을 맴돌자 ‘구도’의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A감독은 택시 기사에게 힐난을 들어야 했고 심지어 무관중 운동을 추진하는 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A감독은 팬들의 빗발치는 비판과 요구를 자존심을 버리고 모두 수용했습니다. 좌익수로 출장했던 지명타자와 3루수로 변신했던 중견수를 모두 원위치 시킨 것입니다. 전임 감독의 그늘로 돌아갔다는 비웃음을 살 수도 있었지만 자존심을 버린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7월에는 13승 6패로 반등했고 8월에도 6승 4패를 기록 중입니다. 어느덧 팀은 5할 승률을 넘어서며 4위까지 올라왔습니다. 팀의 최대 약점이었던 불펜도 놀랄 만치 분전하고 있습니다.

B감독은 7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덕 아웃 라이벌의 2군 감독 시절 ‘화수분 야구’의 주역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6억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 투수가 2군 경기에서 부진하자 18실점 완투를 시킨 일화는 유명합니다. B감독의 부임으로 정체에 허덕이는 팀 내 유망주들이 잠재력을 한껏 터뜨릴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B감독의 1군 사령탑 1년차는 험난했습니다. 믿을만한 선발 투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투수를 마무리로 기용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부터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B감독이 ‘빅5’라 명명한 국가 대표 출신의 다섯 명의 외야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8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된 후 몇몇 선수가 타율을 올려 개인 성적을 그럭저럭 채우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2년차, 즉 올해만큼은 달랐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두 명의 외국인 투수가 단 한 번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등판해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작년에 트레이드해온 사이드암 선발 투수는 강속구와 포크볼을 앞세워 전반기에만 10승을 달성하며 에이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6월 중순에 34승 24패를 기록하며 9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따 놓은 당상인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이드암 에이스는 B감독이 4일 간격 등판으로 고정시키며 구위가 저하되기 시작했고 타자들도 시름시름 부상으로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8개 구단 신인 선수 중 개막 이후 유일하게 1군 엔트리를 지키고 있는 고졸 투수는 마무리로 기용되었으나 볼넷을 남발하며 무너졌습니다.

적극적인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프런트는 검증된 마무리 투수와 젊은 선발 투수를 트레이드로 영입해왔습니다. 순수한 선수간의 트레이드가 아니라 +α가 제시되었다는 소문처럼 균형이 맞지 않는 트레이드였지만 B감독은 프런트의 선물 보따리에도 불구하고 팀을 좀처럼 회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이드암 에이스가 어깨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지만 B감독은 고졸 신인 투수와 구속이 눈에 띄게 향상된 3년차 투수를 승패 및 점수차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등판시키고 있습니다. 팬들은 전임 감독 시절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오가다 두 번의 수술을 받고 공익 근무 요원으로 사라진 ‘소년 가장’ 투수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투수진 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자들은 소위 ‘좌좌우우’ 공식과 이름값에 의해서만 기용됩니다. 당일 컨디션이나 상대 투수 전적은 고려의 대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덕분에 팀 타선은 두 달째 헤매고 있습니다. 창단 첫해 홈에서 슬라이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장 겸 4번 타자를 2군에 강등시키며 팀 분위기를 전환, 꼴찌에서 1위까지 기적적으로 상승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했던 기억은 21년 전 흘러간 옛 노래인가 봅니다. 고비마다 수비 실책으로 무너지는 악습 또한 여전합니다.

급기야 인내심 강하기로 소문난 팬들조차 졸전으로 일관한 패배 후 분노를 이기지 못해 홈구장 중앙 출입문에 남아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팬들은 가을 야구에 대한 염원과 열정을 선수단에 전달하고 그들로부터 ‘열심히 하겠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자정까지 기다린 팬들 앞에 감독도, 주장을 비롯한 선수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프런트 직원이 나서서 봉합했을 뿐입니다. 과연 감독과 선수들이 언제까지 팬들을 피해 도망 다닐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A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인생 수업 잘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쓰디쓴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으며 진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재력을 꽃피우고 성장하는 것은 선수뿐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B감독은 선수들에게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귀를 막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팬들은 올해 포스트 시즌 진출은 둘째 치고 혹사로 인해 당장 내년부터 미칠 여파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B감독이야 팀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선수들은 내년에도 야구를 계속해야 하고 10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A감독과 B감독의 엇갈린 행보에서 학습 효과를 통해 배우는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이 얼마나 엄청난 차이를 담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즌 종료 후 A감독과 B감독은 각각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주목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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