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예슬은 무책임하게 도망치고 말았다. 스파이 명월 사태가 이것이 끝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진 한예슬이 극적으로 돌아와 백배사죄하지 않는 한 국면 전환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한예슬의 전격 미국 도피행은 좋지 않은 여론몰이 속에서 그나마 진실을 알고자 비난을 보류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킨 행위라는 점이다. 그 이전에 스파이 명월을 보던 7%의 시청자에 대한 배신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설혹 미국행 소식이 퍼진 후 이어진 결혼 후 은퇴설처럼 한국 연예계를 떠날 작정을 했다하더라도 이런 식은 그동안 한국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배반이며, 희대의 먹튀 연예인으로 손가락질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이에 따라 제작사는 한예슬을 대신할 배우를 캐스팅할 계획인데 이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누가 되건 패전처리용 주연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당한 주연급 배우가 선뜻 대타를 자임할 리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신인으로 대치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근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런데 한예슬을 배은망덕하고, 무개념에, 먹튀까지 해버린 발연기의 얼굴만 예쁜 연예인으로 전제하고 현재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소 의심쩍은 현상에 대해서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1. 결혼 전제 교제설 보도의 배경은?

톱스타의 이성교제는 모든 연예매체가 노리는 특종 중 최고의 특종이다. 그런데 한예슬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대단히 상세한 교제설이 뒤를 이었다. 보통의 경우처럼 당사자가 파파라치에 들킨 것도 아닌데 터진 열애설은 취재원에 대한 상당한 의심이 간다. 게다가 이 보도가 한예슬의 미국 도피와 은퇴설을 뒷받침하는 정도로 쓰였다는 것도 뭔가 다급하게 움직이는 이면을 느끼게 한다.

또한 더한 가관은 악의적 동기가 느껴지는 보도에 뒷짐 지고 있는 소속사의 여유로운 태도다. 아무리 계약이 끝나가는 배우라 할지라도 그동안의 관계만으로도 당장에 불리한 보도들에 대해 하다못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이 소위 소속사의 상식적인 대처일 것이다. 한예슬이 소속되어 있는 동안 말 못할 고통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몰라도 이래서야 어떤 연예인이 이 회사를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지가 의문스럽다.


2. 너무 서두른 배우 교체 발표

드라마도 결국 사람끼리 만나서 하는 일이라 매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는 없다. 드라마 촬영 중에 감독과 주연 여배우가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그 여배우가 사라졌다. 그러자 곧바로 배우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18부로 예정된 드라마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의지는 높게 사야만 하겠지만 지금까지 현장의 갈등에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신속한 결정과 대처가 오히려 의심스럽다.

이렇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었다면 촬영거부에 도피로 이어지는 파국이 오기 전에 수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한예슬에게 불리한 보도만 이어지고 있다. 감히 PD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든지, CF 촬영을 핑계로 무단으로 현장을 비운다는 등의 보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한예슬이 중증의 스타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양자 간의 갈등과 불화가 있었다는데 한쪽에 치우친 보도는 뭔가 멍석말이의 냄새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상식적으로 패전처리용 주연배우를 섭외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주연 교체 이후 이렇다 할 발표가 없는 것을 보면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제작사의 경솔한 판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설혹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섭외가 되기 전까지는 확정적인 발표는 미루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제작사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교체를 확정해서 발표했다.


3. 쌍방과실이라도 잘못이 더 큰 한예슬만 유죄?

형식적으로나마 도피한 한예슬을 설득하거나 기다리겠다는 가식조차 없었다. 이렇듯 성급한 교체 발표는 한예슬에게 돌아올 곳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감정상태인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개인을 상대하는 조직의 의연한 처세로 보긴 어렵다. 또한 한예슬에 대해서는 초강수를 쓰면서도 비상식적인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는 단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실망스럽다.

스파이 명월의 파국은 한예슬 독단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PD와의 쌍방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예슬만 유죄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의 상황은 쌍방과실의 교통사고를 더 큰 과실이 있는 쪽에 잘못을 전부 떠안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예슬은 이미 먹튀한 연예인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잠적한 그 한 가지만으로도 한예슬은 더 이상 배우라는 이름을 쓸 자격을 잃었다. 그렇지만 한예슬이 그렇게까지 막가게 된 동기와 한예슬만을 유죄로 몰아가려는 이 음침한 분위기의 진실만은 누군가 꼭 밝혀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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