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최근 경향신문사 내부를 시끄럽게 하는 이슈가 하나 있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가 2018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박재동 화백의 사건에 “가짜미투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작성해 데스크 검토 없이 온라인 송고했고, 수 시간 만에 삭제된 사건이다.(미디어스, “경향신문 '박재동 가짜미투 논란' 보도가 삭제된 이유”)

이후 강 기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기사를 삭제한 신문사를 비판하는 등 거의 매일같이 다양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 일련의 사건은 미디어스‧미디어오늘 두 언론비평지에 의해 주로 다뤄지고 있고, 굿모닝충청‧뉴스프리존 등 지역지와 인터넷신문을 제외하면 크게 다뤄지고 있진 않다. 하지만 강 기자의 논리들에 대해서는 한 번 따져볼 구석이 있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통용되는 논리와 양상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박 화백 사건에 대해 2019년 11월 1심 판결이 있었는데, 원고(박 화백)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적이었다는 요지로 원고 패소로 결론이 났다.(미디어오늘, “박재동 성추행 사건 판결문은 어땠나”) 이런 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박 화백) 측 증언만을 인용했다는 비판이 강 기자에게 제기됐다. 그는 여기에 대해 ‘판결문에 기댄 안전 저널리즘’이라고 반박했다. 사법부의 판단이 언제나 절대적인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2일 경향신문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 경향신문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강진구 기자 (사진=미디어스)

말만 놓고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단적인 예로 법원 판결이 노동 문제에 있어 자본 쪽으로 곧잘 기울어진다는 비판은 수많은 사례로 입증되어 왔다. 법원 판결이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믿음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판결이 성폭력 문제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성폭력 문제에서 법원이 기울어진 쪽은 남성-가해자 쪽이다. 이 역시 수많은 사례로 입증되었고, 여전히 입증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아동 대상 성착취 범죄자 손정우에 관한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있다.(법원이 성폭력 문제에 얼마나 남성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 왔는지는 올해 4월 연재된 경향신문의 ‘성범죄법 잔혹사’ 기획을 참고하라)

이런 법원에서 여성-피해자의 증언이 받아들여지고 남성-가해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렇다면 ‘절대적 진실’까지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판결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을 신뢰할 수 없다면 왜 그런가를 입증하는 일이 중요하다. 강진구 기자가 그 근거로 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먼저 피해자와 동료 작가 사이의 카톡 대화를 보면 피해자가 할 말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미디어오늘의 보도(“박재동 성추행 ‘가짜미투’ 의혹 제기 카톡의 ‘진실’”)에 따르면 강 기자가 기사에서 인용한 카톡 대화는 ‘짜깁기’된 것이라고 한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호소하는 부분은 잘라내고, ‘피해자가 할 말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만 드러냈다는 것이다. 짜깁기에 따른 사실왜곡은 물론이고, ‘피해자다움’을 기자가 상상하는 어떤 한 이미지로 고정해놓고 ‘피해자답지 않음’을 제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근거다.

두 번째로 피해자가 성추행을 당한 직후 다시 박재동 화백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카톡 대화 의혹제기와 마찬가지로 ‘피해자답지 않음’을 문제 삼는 방식이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오래 전 피해사실을 고발하고 나선 것을 떠올려보라. 서 검사에게서 용기를 얻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미투를 경유한 사회적 의제화로 과거 자신이 당했던 것이 성폭력이었고, 예민하게 반응했던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다시 결혼 주례를 부탁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은 많다.

그 보수적이라는 법원조차 안희정 전 지사의 항소심에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적어도 진보언론인 경향신문에서 법원보다도 낡은 전제로 작성된 기사를 삭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강 기자가 ‘가짜 미투’라는 조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강 기자는 ‘가짜 미투’를 바로잡는 일이 ‘진짜 미투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어와 논리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제기돼 왔던 ‘지금의 페미니즘은 가짜 페미니즘이고, 진정한 페미니즘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식의 논리구조와 상응한다. 하지만 ‘진정한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사람치고 페미니스트로서 실천하는 사람이 없듯이, ‘진짜 미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 미투 고발자들과 얼마나 연대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령 정말로 무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이를 쟁점화하기 위해 ‘가짜 미투’라는 조어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이런 식의 단어 만들기는 미투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사람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미투 고발자들에게 의심의 시선이 이어지게 만들 뿐이다. “진짜 미투를 지키겠다”고 강변하는 강 기자가 정작 미투 고발자들과 연대해 온 여성들에게는 지지 받지 못하고, 안희정 전 지사‧박원순 전 시장 등 지난 사건들에서 반복적으로 피해자의 반대편에서 발언했던 남성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지지 받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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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잡습니다

미디어오늘 기사를 인용한 위 칼럼 내용 중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가 카톡 대화를 짜깁기했다고 오인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바로잡습니다. 강진구 기자는 박재동 화백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보도자료에 나온 카톡 대화를 인용했을 뿐 피해자에 불리하게 임의로 짜깁기 편집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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