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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모두가 범인? 유쾌한 한 판 블랙코미디가 도달한 뜻밖의 '진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8.14 14:15

[미디어스=이정희]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밥 한 공기가 만들어진다는, 즉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말이다. 그런데, MBC 수목드라마 <십시일반>에서 그 뜻은 '역설적'으로 활용된다. 여럿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탈 특급 살인>만큼이나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된 <십시일반> 8부작의 반전 넘치는 전개가 도달한 결론은 뜻밖의 '진실'이다. 

모두가 의심스럽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십시일반> 예고편은 마치 삼복더위를 날려줄 '납량 특집극'처럼 분위기를 잡는다. 아니나 다를까. 1회가 끝나기도 전에 등장인물 중 가장 돈이 많은 유인호 화백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유인호 화백이 죽은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다. 

당대 최고의 화백이라 칭송받는 유인호(남문철 분) 화백. 그의 명성만큼이나 그의 그림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는 상태이고 당연히 그의 재산은 수백억이다. 그런 그의 생일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인이라는 연극 연출가 설영(김정영 분)은 법적으로는 그의 아내가 아니다. 한때 잘나갔던 모델 김지혜(오나라 분)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인호는 다시 전처 설영을 찾았고 그녀는 그의 수족이 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인호를 돌보고 있다. 

그러나 유인호와 설영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자식은 김지혜와 사이에서 낳은 유빛나(김혜준 분)가 유일하다. 유인호는 김지혜를 버렸지만 지혜 모녀에게 양육비를 대주었고, 파산을 한 김지혜는 어떻게든 유인호에게 잘 보여 유산 상속을 받을까 해서 생일날 일찌감치 찾아들었다. 김지혜 모녀만이 아니다. 사기 전과 4범인 유인호의 이부동생 독고철(한수연 분)과 그의 딸  독고선(김시은 분) 역시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유인호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죽은 유인호의 동생 유해준(최규진 분)은 유인호가 거두어 주는 처지이니 당연히 그 자리에 참석한다. 거기에 유화백의 친구이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문정욱(이윤희 분)과 가사 도우미 박여사(남미정 분) 역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유인호 화백은 지난 1년간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고 비아냥거리며 내일 유언장을 공개할 것이라 선포한다. 자신의 것을 자기 맘대로 줄 것이니 '토' 달지 말라며. 하지만 그 유언장 공개보다 유인호 화백의 죽음이 앞섰다. 그리고 수면제 알레르기가 있는 그가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했음이 밝혀진다. 뜻밖에도 그 다섯 알의 수면제를 먹인 인물이 그의 유일한 딸을 낳은 김지혜와 도우미 박여사, 친구 문정욱, 이부동생 독고 철 그리고 조카 유해준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다섯 알을 나누어 먹인 이들이 범인일까? 하지만 사건은 간단치 않다. 이들이 수면제를 탄 이유에는 그들로 하여금 유언장의 내용에 접근하도록 유인한, 익명의 누군가가 발송한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익명'이 의도한 것은 화가의 죽음이었을까?

등장인물 서로가 의심하고 추궁하고 서로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과정, 당연히 시청자들은 누가 죽였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탐정 게임에 골몰하게 된다. 드라마는 이런 '추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갑자기 등장인물을 인터뷰한다거나, 등장인물들이 SNS '집단 지성'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리해 가는 신선한 기법을 활용하여 긴장감을 높여간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하지만, ‘누가 범인일까’를 둘러싸고 진행되던 드라마는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각도를 튼다. 등장인물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된, 유산의 주인공 유인호의 실체가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빛나와 함께 유력한 유산 상속자로 부각되었던 유해준, 하지만 빛나를 몰아세웠던 그의 태도가 수상하다. 그는 정말 순종적인 조카였을까? 그가 큰아버지가 먹는 초콜릿에 수면제를 타가면서까지 노렸던 것은 뜻밖에도 '진실'이었다. 어린 시절 그와 함께 큰아버지 집을 방문해서 아들 해준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큰아버지 집에 들어간 해준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실종,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해준은 '복수'의 칼을 갈았고, 그 해준이 준비한 복수의 실체가 드러나며 또 하나의 '진실'이 밝혀진다.

탐욕의 에스컬레이션 속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일까?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15년 전 해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충직한 비서이자 친구인 줄만 알았던 문정욱이 '노예’처럼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스스로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항변하는 15년의 시간. 거기엔 당대 최고의 화백이라고 칭송받지만, 그 누구에게도 비열하리만큼 냉혹했던, 심지어 자신이 죽은 뒤의 명성조차 '디자인' 하기에 여념 없었던 유인호라는 거악이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평범한 탐욕이다. 유산을 둘러싼 가족들의 이전투구, 그리고 그런 탐욕의 피해자인 듯한 유인호의 죽음. 하지만 그 드러난 탐욕의 커튼을 젖히고 보면, 거기에는 그들의 탐욕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의 진실이 숨어 있다. 오랜 시간 오로지 자신의 명성과 부를 위해서 동생의 죽음을 감추고, 친구를 노예처럼 부렸으며, 사랑했던 이에 대해 파렴치했던 이기주의자 유인호의 '인과응보'인 죽음이 드러난다. 회를 거듭해가며 탐욕은 에스컬레이션되고, 그 정점에 유인호가 있다. 

과연 ‘누가 유인호를 죽였을까’라는 의문부호의 스릴러로 시작된 <십시일반>은 등장인물들이 '십시일반' 유인호 죽음의 주력 혹은 조력자인가 싶더니, 마지막 회엔 제목의 본류로 돌아온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사후에도 그림값이 치솟는 명성으로 남은 유인호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십시일반' 어벤져스로 활약하며 유쾌한 한 판 블랙코미디로 막을 내린다. 8부작이지만, 아니 8부작이라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신선한 장르적 도전'은 비록 시청률로 보상받지 못했지만, 지상파 드라마는 볼 거 없다며 하소연하는 시청자들의 기호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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