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당초 4부작인 극본을 8부작으로 늘렸다. 장르물이 아직 미흡한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갖춘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아쉬운 점들도 많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8개의 이야기 중 마지막 회가 가장 아쉬웠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그동안 이어진 이야기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너무 착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사건의 실체가 모두 드러났다. 설영이 정욱과 함께 모든 것을 꾸몄다. 괴팍한 유 작가가 자신의 재산을 탐내는 자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행동에 이들은 더 큰 함정을 팠다. 그렇게 유 작가가 만든 편지를 바꿔치기한 이들의 전략은 성공했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궤종시계 안에 있던 유언장을 비밀 금고에 옮기고, 이를 명기해 자연스럽게 알레르기가 있는 유 작가에게 수면제를 먹이도록 유도한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다. 십시일반 수면제 한 알씩을 유 작가에게 먹여 그가 숨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완벽해 보였던 이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준은 유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었다. 빛나 역시 유산보다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유 화백의 친구이지만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정욱의 분노를 이해할 수는 있다. 문제는 실수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죽였단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유 화백의 제안을 받고 은폐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욱은 용서를 받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정욱의 자승자박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친구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유명세도 치렀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설영마저 아내로 맞았다. 이혼 후에도 자신의 곁에 둔 유 화백은 정욱에게는 죽이고 싶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설영에게도 유 화백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설영은 유산을 했다. 만약 유산하지 않았다면 설영의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유 화백은 바람을 피우고 아이까지 낳았다. 빛나를 보며 설영이 가지는 복잡한 감정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모두 파괴한 지혜와 그의 딸이 반가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오랜 시간 쌓인 분노는 그렇게 설영과 정욱이 함께 유 화백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탐욕에 찌든 다른 이들을 초대해 범행에 가담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실제 빛나와 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 화백에게 수면제를 먹인 공범이었다.

유 화백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과정을 설영은 지켜봤다.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분노하고 오열하는 설영의 모습은 섬뜩하기보다는 측은하게 다가왔다.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게 저질렀던 존재가 나약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한때 사랑했던 이라는 점에서 만감이 교차했을 테니 말이다.

정욱은 거실에 걸려있던 그림을 떼어내서 빨간색으로 해를 그렸다. 그에게는 빨간색 알레르기가 있다. 하지만 이를 부정하던 정욱은 그렇게 마지막 순간 분노를 표출하듯 자아를 찾기에 열심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나가며 해준에게 아버지가 묻힌 곳을 알려주고, 빛나에게는 모든 범죄 증거를 건넸다.

꼼꼼하게 작성한 메모와 설영과 주고받은 통화내역은 사건의 실체를 모두 드러내게 했다. 그렇게 지옥과 같았던 유 화백의 집을 나서던 정욱은 호흡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빨간색 유약에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는 그가 방금 듬뿍 색을 칠한 그림을 차 안에 넣고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작업실 앞에서 끝내 숨을 거둔 정욱은 지독했던 삶을 마감했다. 죽기 직전 그가 떠올린 모습은 학창시절 함께했던 셋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살고 싶었던 정욱의 삶엔 지독한 고통만 존재했을 뿐이었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모든 것은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유 작가의 그림이 모두 사라졌다. 범인은 바로 독고철이었다. 유작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 독고철의 행동에 반기를 든 이들은 작전을 짜고 함께 현장을 찾는다. 그렇게 경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독고철의 만행과 유 화백의 실체를 공개하며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모든 재산은 처분해 유 화백의 그림을 샀던 이들에게 보상하고 남은 것은 살던 집이 전부였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빛나 엄마는 뒤늦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독고철은 여전히 그 바닥을 떠나지 못했다. 빛나는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선은 재수생으로 살아가며 여전히 랜선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에 바쁘다. 형을 살아야 하는 설영은 오히려 그 안에서 보다 편안한 모습이었다. 일상의 평범함으로 돌아간 어느 날 빛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과거가 아닌 현재의 아이였다. 부모와 함께 행복한 아이를 보는 빛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바닷가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자신을 못 본 척했던 설영은 사실 어린 빛나를 구해주었다. 물론 그게 사실인지, 빛나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십시일반>

500억이 넘는 재산을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 <십시일반>은 마지막 회를 제외하고는 흥미로웠다. 장르극 특유의 밀도도 존재했다. 하지만 애써 착하기로 작정한 마무리가 문제였다. 실제 이런 식으로 해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장르의 특성상 현실적인 모습으로 마무리를 했다면 후속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도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착한 드라마로 마무리되며 아쉬움이 커졌다.

김혜준의 성장은 중요하다. 젊은 배우들의 성장은 곧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십시일반>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비판할 대목은 없다. 알려진 스타보다 연기를 잘하는 이들을 모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김시은과 최규진과 같은 배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컸다. 물론 익숙하지 않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준 다른 배우들 역시 반가웠다. 촘촘한 설정과 이를 추리하는 과정 등 무리 없는 전개는 <십시일반>을 좋은 드라마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16부작이라는 공식을 깨고 8부작으로 밀도를 높인 시도도 좋았다. 다양한 장르와 형식이 필요한 시점에 <십시일반>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본다. 비록 장르 드라마에 대한 한계와 스타 마케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말이다. 김혜준의 성장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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