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또 다시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장르의 경계선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은 서브 장르가 메인 장르에 종속된 영화를 기준으로 한 판단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개는 어디까지나 주가 되는 장르가 있기 마련입니다. <최종병기 활>이 액션, <블라인드>가 스릴러,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판타지로 나눌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카우보이&에일리언> 또한 '웨스턴 + SF'라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액션'이라고 얼버무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다르게 보자면 <카우보이&에일리언>도 결국은 웨스턴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정의의 카우보이와 맞서 싸우는 상대가 외계인으로 설정된 것일 뿐인 거죠. 어쨌든 서브 장르로서 메인 장르에 작게 종속된 방식이 아니라, <카우보이&에일리언>처럼 두 개의 장르가 노골적으로 결합한 영화라면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워리어스 웨이>가 '웨스턴 + 무협'으로, <프리스트>의 원작이 '웨스턴 + 뱀파이어'의 결합으로 눈길을 끌었던 것처럼 말이죠.
두 장르의 기이한 결합이 힌트가 되어주듯이 <카우보이&에일리언>의 원작은 동명의 만화입니다. (이런 상상력은 그 어떤 매체보다 만화에서 찾아보기가 쉽죠) 대체 이 이질감으로 둘러싸인 두 장르를 어떻게 한데 녹여냈을까요? 이건 <워리어스 웨이>나 <프리스트>의 원작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실험입니다. 두 영화는 동시대에 공존해도 어색할 게 없을 법한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카우보이&에일리언>은 완전히 동떨어진 대척점에 위치한 소재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과학기술의 정점에 달한 외계인과 아직 말을 타고 달리는 카우보이의 결전이라니, 우스꽝스럽지 않습니까?
<카우보이&에일리언>의 원작을 보지 못해서 단정 짓기 힘들지만, 액면 그대로라면 코믹하게 풀어가는 쪽이 관객의 호응을 얻기에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먼 지구까지 찾아올 정도로 발달한 문명의 외계인과 기껏해야 총이나 쏘는 카우보이를 맞붙게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니까요. 초등학생과 격투기 헤비급 챔피언을 링에 올리는 것도 이보단 낫겠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우보이&에일리언>은 정공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의 결단이 그렇다면 관객으로서는 우선 받아들이고 봐야겠죠. 물론 완성도가 좋다는 결과가 뒷받침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주인공의 정체도 그렇고, 외계인이 마을을 급습해 주민을 납치하는 걸 보면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예컨대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영화의 단골 이야깃거리처럼 "저들은 왜 지구에 온 걸까?"라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아울러 "우리의 주인공은 외계인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진행되는 걸 보면 한없이 맥 빠집니다. 흥미로운 소재를 갖다가 녹였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진 못하고 있는 탓입니다. 특히나 올리비아 와일드가 연기한 엘라는 사실상 불필요한 캐릭터, 혹은 제 몫을 하지 못하고 허비되는 캐릭터로 전락합니다.
결과적으로 <카우보이&에일리언>이 정공법을 택한 건 계산착오입니다. 이것이 참 안타까운 건 감독이 다름 아닌 존 패브로이기 때문입니다. 카우보이가 외계인에 당당하게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면, 자신의 특기를 살려 진지함을 덜고 코믹하게 풀어가는 쪽이 거부감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우보이&에일리언>은 억지를 부려 외계인을 과학기술만 갖춘 찌질이로 만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히어로 무비의 또 다른 한 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언 맨>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