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FC 서울 감독대행은 지난 4월 '감독대행'으로 부임 이후, 화려한 쇼맨십을 자랑한 감독으로 많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부임 첫 날, 엄청나게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 몸으로 맞아가며 선수들을 독려해 기분 좋게 첫 승을 거뒀는가 하면 극적인 결승골이 터진 뒤에는 그라운드에 난입(?)해 선수들과 얼싸안는 모습도 자주 보였습니다. 현역 시절 얻었던 '독수리'라는 별칭처럼 FC 서울은 최용수 감독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모습 덕에 15위에서 4위까지 치솟아 오르며 2년 연속 K리그 정상을 향한 '비상'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FC 서울이 현대 오일뱅크 K리그 2011 21라운드에서 만난 전남 드래곤즈는 다소 껄끄러운 상대였습니다. 전남은 정해성 감독 부임 이후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 3위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지동원이라는 '큰 선수'가 빠지게 됐지만 이후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고 2년 만의 6강 진출을 향한 행보를 탄탄하게 이어왔습니다.

4위 서울과 5위 전남의 만남은 경기 전부터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당시 '사제지간'으로 함께 했던 최용수 대행과 정해성 감독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평소 최 대행이 존경하는 정 감독이라고 했지만 이날 경기를 앞두고 최 대행은 3월 전남에 0-3으로 진 빚을 갚겠다며 '복수'를 다짐했고, 정 감독은 순위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서울전을 이겨야한다면서 '전쟁'에 나가는 마음으로 싸우겠다는 뜻을 보였습니다.

▲ 서울-전남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풍경. 이날도 많은 관중이 들어찼다.
결국 이 대결의 승리는 FC 서울이 '드라마틱'하게 가져갔습니다. 0-0으로 끝날 것 같던 후반 종료 직전, 최태욱이 오른쪽 측면을 드리블하며 돌파해 들어간 뒤 땅볼로 골문 쪽에 있던 데얀에게 연결했고, 이를 곧바로 몰리나에게 패스, 몰리나가 왼발로 오른쪽 구석으로 노려 찬 것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며 1-0 승리로 끝났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2만여 관중들은 열광했고, 적지에서 승점을 챙길 수 있었던 전남 선수들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역시나 최용수 감독대행이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경기 내내 다소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였던 최 대행은 몰리나가 극적인 골을 터트리자 코너플래그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서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펼쳤습니다. 몰리나, 최용수대행이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사이 다른 선수들은 아예 층층으로 둘러쌓으며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골을 넣고 승리를 만끽하는 이 순간만큼, 감독과 선수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듯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관중들 역시 골이 터진 기쁨만큼이나 더 흐뭇해했습니다.

▲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펼친 최용수 감독대행과 부둥켜 안는 몰리나
곧바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최용수 감독대행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확정된 승리의 기쁨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골을 넣은 몰리나와 다시 한 번 부둥켜안고, 이 골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최태욱과도 서로 얼싸안으며 '순수한 형님 미소'를 작렬했습니다. 그가 입은 와이셔츠 뒤에는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펼친 '영광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바지는 찢어진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최 대행은 이에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인터뷰까지 마친 뒤 경기장을 빠져 나갔습니다. 이날 승리로 5연승을 달리며 리그 3위까지 솟아오른 FC 서울, 그리고 최용수 감독대행의 인상적인 세레머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더욱 후끈하게 만들었습니다.

▲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비장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최용수 감독대행
비록 경기는 졌지만 정해성 전남 감독의 열정적인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3월, 서울과의 경기에서 3-0으로 이긴 바 있던 전남은 이날 탄탄한 수비력과 빠른 역습을 활용한 경기 운영으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승리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최용수 감독대행 못지않게 정해성 감독 역시 경기 내내 서서 선수들을 독려했고, 때로는 큰 소리를 치고 과잉 동작을 취하는 등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그의 등 뒤에는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고 패하자 정해성 감독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정해성 감독은 패배를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몰리나 결승골의 시발점이 됐던 전남의 코너킥 상황에서 시간을 끄는 지시를 내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하면서 판단 미스를 했다고 스스로 자책했습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다고 하면서 기복이 생기지 않게끔 잘 독려하는 것이 내 임무라는 일명 '아버지같은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골은 단 한 골밖에 나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 수준, 그리고 외적인 요소 모두 한 편의 드라마같았던 경기였습니다. 국가대표 한일전 완패로 자칫 위축될 뻔 했던 분위기를 바꾸고 'K리그는 역시 재미있다'는 것을 보란듯이 보여주었던 의미 있는 한 판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어쨌든 현역 시절을 보는 듯했던 최용수 감독대행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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