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요? <7광구>는 <시크릿 가든>의 일부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원이 <7광구>에서 연기한 차해준은 역시 하지원이 <시크릿 가든>에서 연기했던 길라임의 동생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또한 <7광구>에서 차해준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는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의 아버지를 연기한 정인기입니다. 이것이 애당초 노린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7광구>의 이런 인물관계가 <시크릿 가든>과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연결고리와 지원을 갖고서도 <7광구>는 시쳇말로 안습의 작품으로 남게 됐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웬만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난감하고 당혹스럽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이건 뭐 길게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7광구>는 정녕코 <디워, 클레멘타인>과 비교해도 부끄러울 게 없는(?) 완성도를 가진 영화입니다. 제아무리 평가가 나쁘다고는 하지만 설마 <퀵>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의 영화일 줄은 몰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대체 누구의 손을 거쳐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발로 썼다"라고 표현해도 절대 과하지 않을 시나리오로 100억이나 투자하여 영화를 만들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7광구>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습니다. 괴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캐릭터의 행동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자체에 일관성이나 개연성 따위의 논리적 전개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두 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을 가지고도 뭐가 그리 급한지 생략에 생략을 거듭하면서 영화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내다 버립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감독(선장)이 영화(배)를 버리고 도망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해양재난영화에서 종종 듣는 'Abandon Ship!'이라는 외침이 귓가에 환청처럼 들리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7광구>는 시나리오, 편집, 연출의 삼박자가 골고루 엉망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00% 세트 촬영으로 보이는 화면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배우들의 연기마저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훌륭한 조연들마저 졸연하면서 누구 하나 제 연기를 보여준 이가 없습니다. 특히 온갖 폼을 잡는 하지원은 안쓰러워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괴물은 수준급의 CG로 탄생했더군요. 정작 이 괴물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해서 문제지.
괴수영화의 본질을 완벽하게 살려낼 재간이 없었다면 드라마로 승부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해운대>가 그런 방식으로 흥행에서 재미를 봤고, 윤제균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7광구>도 같은 노선을 걸을 심산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대실패로 끝났습니다. 그저 '7광구'를 무대로 했을 뿐, 석유시추와 관련해서 그 어떤 국가적 사명감도 보여주지 않던 영화가 마지막에 자막으로 내보내던 걸 보면 헛웃음만 나옵니다. 그렇게 <7광구>는 마지막까지 최악으로 남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