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에게 0-3이라는 치욕의 패배를 당하던 지난 10일 저녁 '스포토픽' 블로그를 방문한 누리꾼들의 유입 경로를 살펴보다 보니 의미심장한 키워드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그 키워드는 바로 '이천수'였다.

'삿뽀로 참사'의 원인을 분석한 대부분 언론들은 그 원인으로 이청용의 공백을 꼽았다. 그리고 이청용의 공백이 거론되면서 자연스레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그 대안이 누구일지에 대해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대안이 바로 이천수인 셈이다.

지난해 일본 J리그에 진출한 이천수는 올 시즌 오미야 아르디자의 붙박이 주전으로 현재까지 리그 17경기에서 5골을 넣으면서 맹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지난달 23일 센다이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 이천수 ⓒ연합뉴스
사실 조광래 감독 부임 초기만 하더라도 이천수의 발탁 가능성은 높게 점쳐졌고, 실제로 조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천수의 발탁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천수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조 감독은 이와 관련,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한 차례 이천수를 선발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각계 여론이 좋지 못했다. 전남과의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는 발탁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량과 자세다. 이천수가 J-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대표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결국 조 감독이 이천수를 부를 수 없었던 원인은 이천수의 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선수 차출에 협조를 받아야 하는 K리그 구단들, 특히 모 구단의 압력내지 반발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천수의 발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젊은 대표팀을 키우겠다는 조 감독의 의지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그 말도 틀린 분석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대표팀 스쿼드가 정상적일 때 가능한 말일 것이다.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주축선수 내지 베테랑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을 키우고 그들에게 선배들의 출전시간을 쪼개 귀중한 경험의 기회를 줌으로써 몇 년 후 선배들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조광래호는 어떤가? '삿뽀로 참사' 당시의 대표팀은 어땠는가?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대표팀의 플레이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는 데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기량의 차이가 아닌 '스피릿'의 문제였다. 주장은 있었으되 주장의 리딩이 전혀 먹히지 않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 일본에게 3골을 허용하던 전후반 20-30분 동안 이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고, 동료 선수들의 정신력을 일깨우는 '스피릿'과 기량을 지닌 선수가 당시 조광래호에는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앞으로 조광래호가 맞이할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이나 최종예선에서 또 벌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천수는 현재 조광래호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기량과 경험 모든 면에서 그리고 근성이라는 측면 모두를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이청용의 대안으로 이천수만한 대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이 되면 이천수의 나이는 33세가 된다. 조 감독이 걱정하는 부분 가운데 이천수의 나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설령 조 감독이 이천수를 3차 예선에만 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천수는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 정도로 그는 축구와 대표팀에 대해 진지함과 책임감을 가진 선수다.

그가 네덜란드에 진출한 이후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 그리고 K리그에서 벌인 여러 부적절한 일들과 중동, 일본 리그로의 진출과정에 대해 보도된 내용들을 찬찬히 기사로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 모든 상황이 이천수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천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표팀에서 뛸 기회가 있다면 상황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힌바 있다. 이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줘야 한다.

지금은 일단 월드컵 예선을 치러야 하는 대표팀의 발등에 붙은 불을 꺼야 한다. 전남 등 K리그 구단들과의 앙금을 씻는 일은 순위를 약간 뒤로 물려도 되지 않을까? 박지성을 활용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이청용의 공백을 가장 온전하게 메워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수는 이천수가 거의 유일한 존재다.

이젠 정말 이천수가 필요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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