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눈에 멍이 들고 온몸이 퉁퉁 부은 여자아이가 편의점에 나타났다. 지난 5월에 발생했던 창녕 여아 탈출 사건이다. 머리를 쇠몽둥이로 때리고 감금과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를 했던 이 사건, 2019년에만 43명의 아이들이 '가정에서의 학대'로 숨졌다. 2013년 6,796건, 2015년 11,715건, 2018년 24,604건으로 아동학대 사건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1998년 부모가 남매를 학대, 결국 죽은 딸은 마당에 암매장하고 발견된 동생 영훈이는 다리미와 쇠젓가락으로 인한 상처가 있었던 '영훈이 남매 사건' 그리고 이어진 1999년 소아암에 걸린 신애를 방치한 사건은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가정 문제에 사회가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던 '관습'을 뚫고 20년 만에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었다. 유기와 방임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보건복지부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립되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아동학대' 문제에 나서게 됐다.

국가적 조처는 아직 역부족

SBS 스페셜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 편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후 2013년 칠곡 아동학대 사건에서 방치한 친부에게 최초로 처벌을 했고, 2013년 갈비뼈가 16대 부러지도록 학대당한 이서현 사건을 계기로 2014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학대에 대한 특례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15년 친딸을 굶기고 때렸던 인천 여야 학대 탈출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아동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법안이 발의되고 특례법이 만들어졌지만 아동학대 건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일선의 전문가들은 예산과 인력 부족 등을 들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도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이직률이 30%에 달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보호기관도 부족하다. 동네 노래방 숫자보다도 적은 보호시설. 현재만 해도 8천 건 정도가 보호 절차를 밟고 있지만 정작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갈 시설은 태부족인 상황이다. 결국 구조된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 분리된 아이들 중 겨우 13%만이 ' 시설 보호'를 받고 있다. 재학대 발생률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예산 중 0.03% 수준, 전문가들은 이는 '국가적 방치'라 안타까워한다.

SBS 스페셜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 편

우리나라의 경우, 학대 발견 사례가 외국에 비해 1/3에 불과하다. 실제 학대 사례가 적은 게 아니라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가려진 '암수 범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쉼터에 있는 20살 현석(가명)이는 4살 때부터 10여 년 넘게 학대당했다. 삽으로 소주병으로 맞았고, 변기에 머리가 쑤셔박혔다. '아빠를 죽여주세요'라며 기도했으나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집이 지옥인 아이들, 내 새끼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학대. 아이들은 가출하거나 성인이 되어서야 지옥 같은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회는 시선이 주목될 만한 사건이 벌어지면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관심을 집중시킨다. 언론도 이슈가 되는 사건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정작 그 학대당한 아이들을 누가 기르고 돌볼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아가 왜 학대가 줄어들지 않는가, 어떤 상황에서 때리는가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체벌이 훈육?

SBS 스페셜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 편

학대의 시작은 어디일까? 학대 사건이 벌어지면 계부, 계모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가해자가 친부모인 경우가 78.5%이다. 가해 부모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고, 단 한 명도 내 아이가 미워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해서였다고 한다.

과도한 훈육이었다고 말하는 학대. 말을 듣지 않아서 거짓말을 해서이지 학대할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부모들은 아이의 몸은 아이의 것이 아니며, 언제든 부모가 손을 댈 수 있다고 생각한다.

<SBS 스페셜>이 만난 평범한 부모들은 고백한다. 위험하게 놀 때, 혹은 독박육아 과정에서 아이들이 컨트롤이 안 될 때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게 된다고. 분노 조절이 안 될 때가 있다고.

체벌은 우리 사회 부모가 배운 유일하다시피 한 훈육 방법이다. 하지만 막상 훈육보다는 스스로 감정 조절이 안 돼서 손이 올라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훈육은 즉각적 명령 준수 효과가 있다. 그러기에 부모들은 나의 훈육 방법이 옳았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시 상황은 반복되게 된다. 결국 체벌 효과는 없다. 그러나 '체벌'만이 유일한 훈육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부모는 더 강한 체벌로 아이의 잘못을 다스리려 한다.

SBS 스페셜 ‘체벌, 훈육 그리고 학대’ 편

과연 체벌이 훈육일까? 전문가들은 되묻는다. 이제는 동물도, 범죄자도 안 맞는 세상에 왜 아이들이 맞아야 하냐고. 때리는 것만이 아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너 때문에 못살겠다' 등등 부모들은 차마 타인에게는 입 밖에 내놓지 못할 말을 내 아이에게 한다. 상처 주는 말 역시 정신적 학대다.

스웨덴 역시 한때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1971년 3살 여아가 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부모 및 그 누구라도 아이에 대한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1979).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은 대로 가르친다는 취지였다. 유엔아동 협약보다도 10년 빨랐다.

일찍이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어른보다 귀하게 보고 높게 대접하라 하셨다.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라 하셨고, 당연히 때리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현재에도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훈육이란 이름의 '체벌'이 아이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그건 특별한 범죄가 아니다. 결국 내 아이를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정부는 지난 6월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고자 나섰다.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그간 법적으로 가정 내 체벌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어 온 조항이다. ‘사랑의 매’는 없다. 가정이 세상 전부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만이 아니라 부모들의 '인식적 변화'가 확산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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