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2시간 사이에 한국 축구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8월 10일 저녁 7시 30분, 일본 삿포로에서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은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라이벌전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0-3 참패를 당하면서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1시간 30분 뒤인 8월 11일 오전 7시, 이광종호 U-20(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세계 최강 스페인을 상대해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해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일본은 꼭 이길 것'이라 하며 기대를 얻었던 축구대표팀과 '큰 골 차로 지지 않는 게 다행'이라며 혹평을 들어야 했던 U-20 대표팀의 처지는 불과 하루 사이에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 삿포로돔에서 열린 한ㆍ일 국가대표축구팀 친선경기에서 0대3으로 패배한 대표팀 선수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응원단에게 인사하러 가고 있다. ⓒ연합뉴스
두 팀의 운명이 갈렸던 데에는 정신력, 투지의 차이에서 비롯됐습니다. 골을 허용했음에도 더 이상 따라가려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못했던 성인대표팀과 다르게, U-20 대표팀은 '지면 떨어진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특유의 의지, 투혼이 빛을 발하면서 조별예선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원활한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 비록 승부차기에서 지기는 했어도 한국 축구 특유의 팀 정신을 젊은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어 흐뭇했던 경기였음에는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호나 이광종호 모두 공통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바로 선수 개인의 기술 부족이 확실히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상대 팀이 탄탄한 개인기량을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축구를 구사해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나갔던 반면, 한국 축구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음에도 번번이 상대 선수들에 막혀 시원스런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기술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말, 그리고 세계 수준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뭔가 부족해 보였던 데에는 바로 이것, 기술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수들 개인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경기 중에 자신,있게 펼쳐보였기 때문입니다. 한국 수비가 어제 상당히 허술했던 면도 있기는 했지만 골문 앞에서도 백패스를 하며 동료 선수에게 전달하는 여유를 부릴 줄도 알고, 드리블을 하는 과정에서 그저 끄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면서 개인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는 몇몇 장면에서는 확실히 '탈(脫)아시아'급 수준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러한 개인들의 장점, 기량을 바탕으로 조직력까지 탄탄하게 갖춘 일본 축구는 그야말로 '난공불락'과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경기가 풀리지 않아 그저 볼을 잡고 달리기만 했던 한국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 11일 오전(한국시각) 콜롬비아 마니살레스 에스타티오 팔로그란데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16강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승부차기에 들어간 한국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전에서 열심히 싸운 이광종호 역시 U-20 월드컵 전체적으로 나타난 선수 개인 기술 능력들을 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그리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고, 침착하게 경기 운영을 펼친 선수들이 있기는 했지만 특출난 개인기를 자랑하거나 탄탄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마음껏 상대 선수들 사이를 유린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스페인전에서 끈끈한 조직력과 투혼, 의지로 좋은 경기를 펼치기는 했지만 그 속에서 나타난 개인 기술 저하는 뭔가 모를 안타까움만 느끼게 했습니다.

일본이나 유럽, 남미 팀들이 '진짜 기술 축구'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개인기술부터 철저하게 배운 환경적인 요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기본기부터 시작해 철저하게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유스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선수의 진정한 발전과 체계적인 경기력 향상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시스템 덕에 유럽, 남미 팀들은 세계 대회마다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일찌감치 20년 전부터 이를 정착시키는 데 안간힘을 써왔고, 하나하나 내실 있는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많은 유럽 명문팀들이 주시할 정도가 됐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배 아픈 일일 수 있어도 이런 노력이 뒷받침된 것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 역시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기술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기본기부터 가르치고 육성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기는 합니다. 몇 년 동안 기본기만 익힌 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축구팀에 들어가서 매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독일 분데스리거 손흥민의 사례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선수들에 기본기를 강조하는 문화가 이제 걸음마 단계인 상황이고, 그것도 아직까지 제대로 정착되기에는 축구계의 마인드, 시스템 문제 등 많은 걸림돌이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마인드가 아직까지는 전체적으로 깨어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선수 개인보다 승부에만 집착해 여전히 구태의연한 지도 방식을 고수하는 지도자들은 한국 축구를 정체기로 걷게 한 데 한 몫 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현실이 그렇지 못해 어렵다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왜 그 틀을 깨지 못하는지 반문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현대 축구가 틀을 깨고, 기술을 더욱 중시하고 강조하는 시대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월드컵, 대륙별 대회, 클럽 축구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한국 축구는 체력, 정신력 면에서는 분명히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지만 선수 개인의 기술은 여전히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항상 더 높이 떠오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아쉽게 그 한계를 넘지 못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해 진정으로 도전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축구계가 기술에 대해 더욱 중요성을 느끼고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이 더해졌을 때, 한국 축구를 좋아하는 어느 누구나 제대로 된 '진짜 축구'를 구사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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