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도자든 그 사람 나름대로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 철학에 따라 조직이 바뀌고 분위기는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도자, 캡틴, 리더의 역량, 존재감은 그 조직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매우 개성적인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만의 소신, 뚜렷한 철학을 갖고 밀어붙이며 내실 있는 성과를 냈던 감독이 바로 조광래 감독이었습니다. 이미 안양 LG 감독 시절부터 잠재력 있는 신예를 발굴, 육성하고 무명급 선수들을 조직력 있는 팀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틈만 나면 유럽, 남미에 가서 직접 보고 배우는 '현장형 지도자'로서 선진 축구에도 우리나라 축구 감독 중에서는 어느 정도 눈을 뜬 감독으로도 유명합니다.

▲ 조광래 감독 ⓒ연합뉴스
조광래 감독이 지난해 축구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을 때 팬들의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축구계 내부에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적어도 팬들로부터 이렇게 욕 안 먹고 국내파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한 경우는 거의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광래 감독은 한국 축구의 기존 틀을 깬 다양한 시도와 실험으로 '재미있는 축구'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며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냈습니다. 특히 축구계 내부에 있던 문제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고 소신 있는 행보와 발언을 보이며 팬들의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선수 차출 문제와 관련해서 소신을 지키기 위해 기술위원장에 정면으로 반박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속시원하다'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간혹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던 적도 적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적어도 이번 한일전에서는 조광래 감독답지 않은 모습이 몇 차례 나타나서 좀 실망감이 큰 부분이 있었습니다.

통상 평가전이라 할지라도 경기 며칠 전에 베스트 11을 공개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선수들 내부에서야 어느 정도 공공연하게 주전, 비주전이 누구인지를 알겠지만 베스트 11을 언론 등 대외적으로 사전에 공개한다는 것은 선수단 내부나 상대팀에도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온두라스와의 평가전부터 베스트11을 공개하면서 밝힌 이유에 대해 조광래 감독은 타이틀이 걸린 매치가 아닌 평가전이고 이 경기를 통해 조직력을 완성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베스트 11을 선공개하면서 비주전 선수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자칫 선수단 내부 분위기를 흩트리는 데 악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베스트 11을 당일에 공개하는 이유는 마지막까지 경쟁 의식을 유발시키고, 경기 직전에 발표함으로써 최상의 컨디션, 경기력을 유지해 경기에 나가게끔 하는 의도도 갖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에도 조광래 감독은 베스트11가 누구인지를 공개했고, 이는 한일전 스타팅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에서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경기 하루이틀 전이 아니라 1주일 전에 베스트11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공개한 이유도 달랐습니다. 경기 하루 전, 일본 기자의 질문에 대해 “평가전 상대팀이 우리 전력을 미리 알고 나설 때 그런 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면 더 좋은 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미리 명단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다르게 보면 일본팀을 너무 자신만만하게 봤다는 얘기로도 들립니다. 어떻게 선수 기용할 것인지를 미리 밝혔다보니 일본 선수들은 이를 적극 간파하여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 공격 길목을 원천 차단하는 데 성공했고, 그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펼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주전, 비주전 너나 할 것 없이 어수선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비참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외국팀과의 경기라 해도 기존에 세르비아, 가나와 맞붙었던 때와 이번 일본과 맞붙는 것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상대 팀에 대한 정보가 많아 그 선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세세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 1주일 전씩이나 미리 전술 운영 패턴까지 공개한 것은 결과적으로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을 해보게 됩니다. 나름대로 조광래 감독의 소신에 따라 했다고 하지만 국가대항 경기를 펼치는 가운데서 이 같은 모습은 조금 곱게 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평가전이라 해도 한일전의 특수성은 한국,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 세 차례 평가전과는 다르게 조직력 점검 뿐 아니라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역량과 준비를 갖춰야 했습니다. 어려운 여건도 있었고, 홈 텃세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준비 과정부터 조광래 감독은 조금은 잘못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월드컵 3차예선은 기존 평가전과 다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당분간 보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한일전 완패를 당한 뒤 씁쓸한 기억을 되짚어보며 한 번쯤 짚고 넘어가게 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처음 맡아 1년 만에 제대로 뭇매를 맞고 있는 조광래 감독이 하루빨리 이번 교훈을 발판 삼아 조직 관리 면에서 재정비해서 월드컵 3차예선부터는 이런 모습을 다시 드러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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