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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최초 보도한 제주 기자가 말하는 '고유정 보도'"언론, ‘인권보도준칙’ 잊었다"…피해자 유가족 "자극적 보도"-피의자 변호인 "마녀사냥"
김혜인 기자 | 승인 2020.08.11 16:08

[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고유정 사건’을 최초 보도한 기자가 언론 보도 행태를 돌아보며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고유정은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1,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일 제주언론학회·제주도기자협회·PD연합회 제주지부·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20 제주언론학회 세미나는 ‘취재현장에서의 인권’을 주제로 다뤘다. 발제를 맡은 고상현 제주CBS 기자는 “사건의 잔혹성 때문일까, 고유정 사건은 사건 발생부터 경찰·검찰 수사, 재판 내내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며 “제주지역 언론사뿐 아니라 다른 지역 언론사, 중앙 언론사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에서 고유정 사건을 보도했다”고 입을 뗐다.

고 기자는 지난해 6월 1일 ‘고유정 전 남편 살해사건’을 최초 보도한 데 이어 경찰 수사의 문제를 집중취재한 ‘고유정 사건 부실수사' 보도로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고 기자는 경찰·검찰 수사뿐 아니라 재판 과정을 취재했으며 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피의자 측 변호인은 수시로 고 기자에게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토로했다고 한다. 

피해자 유가족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를 얘기했고, 피의자 측 변호인은 ‘마녀사냥’식 언론 보도를 지적했다. 고 기자는 언론이 ‘인권보도준칙’을 잊은 듯했다며 대표적 사례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에서 나온 지난해 7월 4일자 단독보도 <“니가 인간이냐” 이미 숨진 前남편에 문자보내고…고유정 범행 전말> 기사를 꼽았다.

조선일보 2019년 7월 4일자 단독보도와 중앙일보 2019년 7월 3일자 보도

조선일보는 전남편 살해사건 공소장을 단독 입수해, 공소사실 내용을 거의 그대로 기사에 옮겼다. 기사에 언급된 들통, 가스버너, 부탄가스, 도마 등의 도구는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이며 이전까지 경찰과 검찰 역시 피해자 유가족이 받을 상처를 염려해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또한 피해자 아이가 사건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전했다. 

고 기자는 지난해 7월 3일 자 중앙일보 <“고유정 카레에 수면제 섞어 182cm 전 남편 고꾸라졌다”>기사 역시 부적절한 보도로 꼽았다. 해당 기사는 고유정이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살해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사건 발생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려 

사건 초기 범죄 발생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처럼 쓴 기사가 많았다고 한다. 지난해 6월 16일자 서울신문 단독보도 <“前남편이 아이 문제로 무시해 기분 나빴다”> 기사는 경찰의 말을 인용해 고유정 진술 내용을 보도했다. 고 기자는 "이는 마치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데다 사건 초기 범행 동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유가족 측에 입장만 물었을 뿐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범인을 피해자 유가족으로 지목한 기사까지 나왔다. 항소심 선고 직후였던 지난 7월 15일 머니투데이 <고유정 의붓아들 살인 ‘무죄’ 확정되면 아빠가 ‘범인’?>기사는 “경찰이 향후 피해자 아버지를 재수사할 수 있다”는 황당한 내용이 담겼다. 해당 기사는 피해자 아버지의 항의로 삭제된 상태다.

일부 보도는 피해자 유가족에게 상처가 될 만한 제목을 뽑았다. 지난해 6월 9일자 MBN <[단독] 고유정 “전 남편이 성폭행하려해 살해”…흉기 등 미리 구입> 기사를 지적한 고 기자는 “도내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참석한 경찰 브리핑에서 나온 내용을 ‘단독’을 달고 내보냈고, 당시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유정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고 지적했다. 경찰 측이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보도를 자제해 달라 요청해 도내 다른 기자들은 완곡한 표현으로 이를 순화해 보도했다. 하지만 MBN 기사는 주요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돼 피해자 유가족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자극적인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서울신문 <고유정, 전 남편과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생활 중 흉기”>, 국민일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해서^^” 고유정이 인터넷에 올린 글>, 중앙일보 <[단독] 욕하고 걷어차…‘친절한 유정씨’의 돌변, 집만 오면 악마였다>, 머니투데이 <고유정 방식대로 카레에 졸피뎀 뿌려 먹어봤다>, 위키트리 <“신랑 미울수록 애는 더 미워” 소름 돋는 무속인 고유정 사주 풀이>, 경북신문 <고유정 ‘실제 모습은?’…경계성 성격장애 논란 속 충격의 사진 한 장 ‘핫이슈 등극’>, TV조선 <단독/ 범행도구 구입 후 술집에서 웃고 떠든 고유정> 등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편

'무죄추정의 원칙'은 어디로...고유정 변호사 "야만국가"

고 기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세계일보에서 보도한 고유정의 긴급 체포 당시 영상 공개는 사건의 본질과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범행 직전 친구들과 술집에서 치킨을 먹고 있는 모습을 담은 TV조선 <탐사보도 세븐>, 고유정의 고교·대학 시절 사진을 공개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선정적인 언론 보도 속에서 고유정에게는 최소한의 기본권조차 없었다. 고 기자는 보도 대다수가 인권보도 준칙에 명시된 헌법 27조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사건 초기 고유정을 변호했다가 비난 여론에 사임한 박재영 변호사는 고 기자에게 “재판 전부터 마녀사냥으로 여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법원마저도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자, 재판합시다', 이거는 문명국가가 아니고 야만국가와 똑같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본인들이 알고 있는 그 일방적인 시각으로 경찰, 검찰, 또 선정적인 언론들 통해서 여론 재판을 끝내고 재판 시작하자고 하면 말이 되냐"며 "무슨 말을 하든 변명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고 기자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언론사 수익구조-속보 경쟁에 인권보도 준칙 잊혀져

고 기자는 “포털 기사 조회 수가 언론사 수익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자극적 선정적인 보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하루에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기사에 대한 욕심은 기자의 마음속에 늘 존재해 언론사 간 속보 경쟁을 하는 틈바구니에 있다 보면 인권보도 준칙은 쉽사리 잊게 된다”고 말했다.

고 기자는 “기자들이 다루는 이야기는 살아 숨 쉬는 인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조회수를 위해 쏟아내는 선정적 보도의 유혹을 우리가 먼저 뿌리쳐야 한다”, “보도에 앞서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고 비윤리적·자극적·선정적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제주중재부 위원을 맡고 있는 강문숙 변호사는 “취재현장에서의 인권을 논함에 있어 최상위 규범인 헌법이 정하는 ‘인권’에 관한 내용들이 언론인들에 의해 준수되어야 하는 점이 중요하다”며 “다수 당사자의 기본권 충돌상황에서 특히 ‘국민의 알권리’와 관련된 언론보도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검토라든가 다수 당사자의 기본권충돌상황에 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은 범죄 보도에서의 인권 보호 관련 방송심의 규정을 소개하며 인권 보호 보도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범죄 보도에서 인권 보호 관련 기준은 ‘공개금지’(제22조), ‘범죄사건 피해자 등 보호’(제21조의2), ‘범죄사건 보도 등’(제23조)이다. ‘범죄 및 약물묘사’(제38조)조항에는 범죄 내용의 묘사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이 중 ‘공개금지’ 조항은 ‘범죄사건 가해자의 인적 사항' 공개에 관한 것으로 "방송은 ‘가해자’의 인적 사항 공개에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범죄사건 보도 등’ 조항은 범죄보도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를 위해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 전에는 피고자 또는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되고, 수갑에 묶이는 장면 등은 방송할 수 없다.

김혜인 기자  key_mai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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