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최강희가 온몸을 다해 망가지는 투혼으로 따라잡고자 해도 논란의 공주의 남자는 굳건히 수목 드라마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특히 조선 최초의 반정인 계유정난을 그린 8회는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고조될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번 주 수목의 권좌를 내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편지의 난이 된 계유정난 - 두 개의 불효

계유정난 시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전해준 유인용의 편지를 달빛에 비추어 읽는 데 집중할 때 대기하고 있던 종에 의해서 철퇴에 사망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그것을 김승유가 세령에게 보낸 편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상황을 각색했다. 극중 김종서는 김승유가 마음에 둔 궁녀가 바로 수양대군의 딸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 수양대군이 종에게 편지를 가져오게 한 것에 의심을 갖지 못했다.

아무리 김종서가 냉철한 사람일지라도 자식 앞에서는 한낮 아비에 불과한지라 김승유가 궁녀와 스캔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무마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그렇지만 결국 김승유가 세령을 연모하게 된 것이 아버지 김종서를 죽게 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니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그와 동시에 세령의 신분을 궁녀로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한 것은 불효 이전에 불충을 저지른 것이다.

공주의 남자가 은근히 막장 사극이란 말을 듣는 이유는 작가의 역사에 대한 얕은 지식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궁녀는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건 아니건 간에 임금의 여자이기에 궁녀를 사적으로 대하는 것은 엄격히 금하는 일이다. 물론 흔치 않게 출궁한 궁녀 역시도 결혼은 엄격히 금지했다. 그렇지만 간혹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 사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만일 적발될 경우 관직을 삭탈당할 정도로 엄하게 다스렸다. 그러니 김승유는 세령을 사랑함으로 해서 불충과 불효를 동시에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개연성 문제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개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또한 그때 김승유만은 살리기 위한 세령의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진다. 집을 몰래 빠져나와 김종서를 만나기는 했지만 집안에 들기 직전에 몸종 여리에게 끌려가 광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속치마를 찢어 혈서를 써 김승유에게 전해달라고 여리를 설득한다. 혈서까지 쓴 세령의 집념에 여리는 차마 거절치 못하고 결국 김승유에게 전하게 된다. 그 천에는 ‘승법사 여리’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저 먹으로 썼어도 사랑에 달뜬 김승유 입장에서는 당장 달려갈 상황인데, 혈서를 보자 앞뒤 가리지 않고 승법사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세령은 아버지 수양대군의 거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김승유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사용했다. 다행히도 아비와 가문을 멸족시킬 거사를 밝히지 않고 김승유만을 살릴 수 있는 묘책이긴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불효인 것만은 피할 수 없다. 어차피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니 가문에 피해를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역사와는 다르지만 드라마 공주의 남자 속 계유정난은 곧 편지의 난이 되었다. 편지로 인해 김종서가 죽고, 편지에 의해 김승유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헌데 예고에 등장했던 경종커플(경혜공주와 정종)의 분량이 예고편과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짧았다. 굳이 시간을 재자면 1분 남짓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계유정난의 전개에 경혜공주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이후라면 몰라도 아직은 시청자의 바람이 크다고 해도 무작정 경혜공주가 등장하는 것은 지나친 무리수일 뿐이다. 그렇지만 제작진은 경혜공주의 분량을 학수고대하는 시청자의 기대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예고편에 8회 전분량이나 다름없는 장면을 넣었다.

그리고 9회 예고도 역시 많은 부분 경혜공주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9회 역시도 계유정난의 거친 풍랑이 이어지는데 거기에 경혜공주가 낄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낚시라고 불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고는 어차피 낚시성향이 짙은 것이지만 제작진이 적어도 경종커플의 파워를 의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미 준비된 대본을 소화하고서는 경종커플의 분량을 늘릴 청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비운의 경혜공주는 극중에서는 사가에, 드라마에서는 예고편에 갇힌 신세일 뿐이다. 그래서 경혜앓이 환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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