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진경]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보기 드문 영상미로 눈길을 사로잡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감독 김미례)이 <여배우는 오늘도>(2017),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양자물리학>(2019) 등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넘나들며 주목할 만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박홍열 촬영감독의 협업으로 알려져 이목을 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제 전범기업 연속폭파사건(1974~75)을 다룬 영화로 전후 일본 사회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멈추고 동아시아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들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수감 중이거나 사망하여 대면 촬영이 어려웠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주요 인물들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 일본 홋카이도와 동북지방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컷

오랜 기간을 거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제작진이 담아낸 것은 안개였다. 박홍열 촬영감독은 안개의 모호함을 통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인물들이 마주해야 했던 성찰의 시간을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자신들의 가해자성을 마주해야 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회한에 찬, 건조한,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오롯이 카메라에 담겼다. 자욱한 안개 속에 펼쳐지는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들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앤매너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홍열 촬영감독과 김미례 감독의 만남은 낯설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을 절로 실감할 수 있게 한다. 김미례 감독은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홍열 촬영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서 깊이 공감했기 때문에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라고 협업 계기를 밝혔고, “2016년 새해에 도쿄 산야에서 떠돌이 화가를 만났다. 「쿠시로의 영혼」이라는 제목의 짙은 안개와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그림에 이끌렸다. 그 엽서를 레퍼런스로 박홍열 촬영감독에게 전달했고, 마침내 폐광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새까만 어둠이 내릴 때까지 촬영했다”라고 촬영 에피소드를 밝힌 바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컷

두 감독은 완벽한 협업으로 사라지는 공간들을 색과 빛 그리고 공간감으로 유려하게 담아냈다. 태평양을 경계로 넘나드는 갈매기와 까마귀, 텅 빈 채 폐허가 된 학교 앞 이슬 맺힌 거미줄, 철도 옆에 핀 보랏빛 꽃들이 안개 속에 어우러져 한 편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특유의 영상미를 선사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강렬한 소재를 다루지만 피해자나 참혹한 현장의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는다. 1974년 미쓰비시중공업 폭파를 시작으로 활동한 ‘늑대’ 부대의 이야기에서는 홋카이도 자연 풍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들이 공격한 빌딩들을 건조하게 대치시켰다. 이야기를 톺아보면 늑대 부대와 일본 국가의 전투로 힘의 비대칭적인 구조이지만, 화면은 역으로 자연 풍광에 힘을 보탠다. 색다른 접근들이 모여 완성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당시 일제전범기업 연쇄폭파사건에 참여했던 이들의 내면을 아우르는 정서를 관객들과 공유하며 거센 파동을 일으킬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스틸컷

한 편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하는 영상미가 빛나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8월 20일부터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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