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5일 기자회견 을 열어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이 삼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사제단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종찬 민정수석은 현직 고검장 신분으로 이학수 부회장 사무실을 방문해 여름 휴가비를 직접 받아가기도 했고, 김성호 국정원장 후보자에게는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돈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6일 신문들은 일제히 사제단의 기자회견과 관련한 내용을 다뤘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이 이를 1면 머릿기사로 다루며, 크게 부각해 실은 반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삼성 감싸주기’의 모습을 보이며, 소극적으로 보도했다.

한겨레·경향, 삼성특검 철저 규명 촉구

한겨레는 <사제단 “김성호·이종찬씨 삼성 떡값 받아”>(고제규 김희승 황준법 기자),<이명박 정부로 번진 ‘떡값 의혹’ 새 파문>(김남일 황준법 기자)을 통해 “삼성 로비 대상자들은 애초 예상보다 적은 3명뿐이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이명박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포함돼 메가톤급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 여러경로로 ‘명단 공개말라’ 압박”>(김지은 기자)에서 “국가정보원과 언론사 관계자 등이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가 포함된 삼성 로비대상 명단의 공개를 막으려고 천주료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며 안간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겨레는 특히 이날 사설 <삼성비자금 사용처 수사, 더 미룰 일 아니다>에서 “하나같이 공직 비리를 막거나 처단할 책임을 진 요직이다. 그런 자리를 맡은 이들이 비리 의심을 받는게 정상일 순 없다”며 “이쯤 되면 특검팀이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 수사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향신문도 <“김성호·이종찬 삼성 돈 받았다”>(조현철 장관순 기자), <권력 핵심인사 포함…특검 재차 압박>(조현철 기자, 최재영·안홍욱기자)을 통해 “폭로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한 특검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구체적 자료제출 때는 엄청난 파문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경향 또한 이날 사설 <사제단이 밝힌 ‘떡값 인사’ 특검이 규명하라>에서 “뇌물수수자 명단은 삼성특검의 수사 단서로 쓰일 수 있다”며 특검의 수사 목적 중 하나가 비자금의 용처를 파악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사제단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소명을 해야 할 것이고, 금품수수가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종찬·김성호 삼성 돈 받았다”>(장상진 기자), <사제단 주장, 진위 떠나 큰 정치적 파장>(강훈 장상진 기자)에서 “진위 여부를 떠나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라며 “새 정부의 정보와 사정 분야 최고 책임자에 대한 의혹 제기인데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이 문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보도해 ‘정치공방’으로 몰아가려는 사도를 보였다. 조선은 사설 <특검과 사제단, 삼성 떡값의 시궁창에서 국민을 해방시키라>에서 “특검은 이 의혹을 엄정하게 규명해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긴 했으나, “사제단의 ‘단계적 폭로’를 종교단체의 정의구현 방법으로 보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며 “정말 그렇게 나라 앞날을 걱정했다면 정부 각료 인선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명단을 공개했었어야 마땅하다”고 교묘한 양비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또한 <사제단 “김성호-이종찬 삼성돈 받아”>(최우열 전지성 기자), <특검수사 압박…증거는 제시 안해>(전지성 최우열 기자)에서 “‘명단’에 집중된 관심에 비해 추가 폭로 내용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며 “정치권 일각에선 사제단의 이날 추가폭로가 4·9 총선을 겨냥해 정부 여당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해 조선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또 사설<‘삼성 떡값’ 사제단 주장 진위 밝혀야>에서 “사제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3명이 떡값을 받았다고 구체적으로 거명한 이상 수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찔끔찔끔 ‘떡값 수수명단’을 공개하는 사제단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며 “작년 11월에 1차 거명한 임채진 검찰총장, 이귀남 대검 중앙수사부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의 떡값 수수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해 사제단의 주장이 마치 근거가 없는 폭로인 것처럼 몰기도 했다.

중앙일보, 홍 회장 지키기·삼성 감싸기로 일관

중앙일보는 아예 노골적으로 삼성을 옹호하는 데 나섰다. 다른 신문들이 1면에 ‘사제단 기자회견’에 대한 보도를 내보낸 반면, 중앙일보는 10면 3단 기사 <사제단 “김성호·이종찬씨 삼성 돈 받아”/당사자 “BBK 같은 허위 주장…법적 대응”>에서 사제단의 의혹제기와 당사자들의 해명을 같은 비중으로 실어 축소 보도했다. 특히 사설 <사제단의 무책임한 폭로>에서는 “더 이상 이런 식의 폭로에 나라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증거없는 폭로는 더 이상 거론조차 말아야 한다”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또 “사제단과 김 변호사가 떳떳하려면 전체 명단과 확보 중인 증거 모두를 즉각 공개하라”며 요구하기까지 했다. 또 “더 이상 이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가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사제단을 협박했다.

중앙일보는 최근 이뤄지고 있는 삼성특검과 관련해서도 기사를 거의 내보내지 않아 ‘삼성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 4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중앙일보 위장계열분리’, ‘안기부X파일’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 의혹 등으로 삼성 특검에 출석했을 때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홍 회장의 ‘경호원’으로 나서 다른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해 삼성 특검 촬영기자단이 “기자의 본업을 망각하고 취재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며 중앙일보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이미 1999년 홍 회장이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검찰에 출석했을 때도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쳐 비난을 받았으며, 2005년 홍 회장의 X파일 관련 검찰 출두 당시에도 과도한 경호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중앙일보의 이런 행태에 대해서는 한겨레가 6일 사설 <기자가 사주의 경호원으로 뛰는 현실>를 통해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취재기자가 수사기관에 출두하는 사주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것은 기자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라며 “다른 언론의 정당한 취재를 방해하기까지 한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꼴”이라고 비판했고, KBS도 5일 보도에서 “중앙일보 기자들이 ‘과도한 경호열기’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이 내놓은 여러 의혹들은 특검 수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들은 뇌물을 주고받은 ‘증거를 내놓으라’고 사제단을 압박하고 나섰다. 현금으로 뇌물을 주고받은 데에 어떠한 물증이 남아있기는 어렵지만 사실 뇌물을 직접 준 당사자의 자백보다 더 큰 증거는 없다. 이를 근거로 특검이 비자금의 사용처를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특검팀은 ‘뇌물’을 받은 검사로 지목된 인물들에 대해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뇌물 인사’들은 공직 비리를 막거나 처단할 책임을 진 요직에 있기 때문에 더욱이 철저한 진상 규명 검증이 필요하다. 삼성 특검팀은 삼성비자금 조성과 사용내역 등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정-경-검-언 유착’이라는 아직도 엄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부패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특검은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내고,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언론들이 제 역할을 방기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정치공방으로 몰아가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이다. 언론은 자본과 정치권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삼성특검이 진실을 밝히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2008년 3월 6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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