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백종훈 원불교 교무] 닷새간 더불어 정진했던 도반들이 떠난 빈자리에 홀로 남았다. 법당청소를 마친 뒤 세탁실에 들르니 요 껍데기와, 이불, 베갯잇, 방석 피가 수북하다. 밖으로 나가 천막을 걷고 탁자와 의자를 치우자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우수수 나린다. 옆으로 길게 나란히 앉아 정성스레 공양을 들던 법동지들의 잔상이 반짝이다 스러진다.

땀에 전 몸을 씻어낸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부처님 모신 대각전에 올라 경종 울림에 향을 사르고 불경을 읊으며 길 잃은 영혼의 앞길을 밝히는 천도재를 지낸다. 그리고 내리막에 깔린 야자매트 위로 발길을 놓아 요사채에 다다른다.

엄지손가락보다 큰 장수풍뎅이가 엉금엉금 기어가다 내 발 앞에서 멈칫 할 새 멀찌가니 길 가 수풀에서 나온 꺼병이들은 까투리를 따라 줄이어 재빠르게 어디론가 뛰어가고 전선 위에 앉은 새 한 마리는 그대로 비를 맞고 있다.

사진=백종훈 원불교 교무

지리산 굽이굽이 짙은 녹음을 바탕으로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바람 없는 빗소리가 잔잔하게 허공을 가르는 저편 수풀 사이로 계곡물이 세차게 흐른다. 처마 끝에서 낙숫물이 자갈배수로에 떨어져 자아내는 소리에 마음이 평안하다.

툇마루에 앉아 얇고 따뜻한 숄을 펴 무릎에 얹는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치 옷걸이에 걸린 옷처럼 온몸의 긴장을 푼다. 이어 지게에 실은 짐을 바닥에 부리듯 논에 물 대듯 정신을 배꼽 아래에 집중한다.

호흡이 차차 골라지니 이내 침이 흘러나와 입안에 고인다. 이를 가득 모아 가끔 삼켜 내린다. 잠이 밀려오면 눈을 떠 쫓아내고 치성한 잡념은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스스로 흩어지기를 기다린다.

사방은 어느새 저녁 어스름에 젖어간다. 한 자세로 오래 멈춰 힘든 관절을 주물러 풀어준다. 신을 신으려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마루 아래에 털도 제대로 안 난 어린 쥐 한 마리가 죽어있고 다른 한 마리는 거미가 자기 집으로 끌어 올려 체액을 빨고 있다. 쓰레받기에 담아 꽃밭에 묻어준다.

숨이 끊어져 둥글게 말려 있는 노래기가 여기저기 너부러진 사이사이로 살아있는 다른 형제들이 분주히 기어 다닌다. 잠자리가 비를 가르며 화단 위를 서성거리고 길 잃은 벌은 방충망에 붙어 지친 날개를 쉰다.

달걀이 담긴 냄비 물이 끓자 가스 불을 낮추고 누룽지를 삶는다. 소반에 백김치와 나물반찬을 올리니 금세 소박한 만찬이 마련되었다. 컨테이너하우스 큰 유리창 너머 반야봉을 향해 앉아 두 손 합장하고 감사기도 올리고서 수저를 든다.

멀리서 천둥이 울리더니 바람이 불고 비가 더 거세게 내려 흙탕물이 마구 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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