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면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하고 미운 감정이 앞섭니다.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 등 이해할 수 없는 문제로 늘 한국민들을 자극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스포츠를 통해 대신 분풀이를 하기도 하고, 이에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승부를 떠나 그 상대가 일본이든, 중국이든 칭찬할 만한 것이 있으면 칭찬하면서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적어도 10일 저녁, 일본 삿포로 돔에서 열린 축구 한일전에서는 일본 축구에 그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꼈어야 했던 조광래호였습니다. 그것이 잘 이루어지면 훗날 더 높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일본 축구가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며 향상된 기량을 바탕으로 선수들은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고, 그들이 원하는 전술,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보여줬습니다. 개인기부터 조직력까지 모든 면에서 더욱 탄탄함을 갖춘 일본 축구 앞에서 한국 축구는 작아 보였습니다. 한국 역시 이런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번 한일전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 일본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아시안컵 이후 한동안 주춤한 행보를 보였던 일본 축구가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평가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3-0 완승을 거두며 한국에 굴욕을 안겼습니다. 경기 결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짧은 원터치 패스를 활용한 아기자기한 패싱플레이로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내며 우세한 경기력을 펼친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늘 일본만 만나면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 일본 선수들은 시종일관 여유 있는 경기를 벌였고, 그 결과 1974년 이후 37년 만의 3골 차 이상 승리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 감독이 모처럼 꺼내든 4-2-3-1은 한국의 4-2-3-1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혼다 케이스케, 카가와 신지, 하세베 마코토, 엔도 야스히토 등 일본 미드필더들은 촘촘하게 짜여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유연한 움직임과 정확한 패스로 그들만의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기본적으로 전방부터 한국을 강하게 압박해 볼을 따내고, 자케로니 감독 부임 이후 키워온 파워를 활용해 한국 선수들과의 경합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점유율에서 완전히 앞서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공-수를 완전히 장악하고 점유율을 가져오니 당연히 기회는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탄탄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순도 높은 플레이는 곧바로 결정적인 득점 찬스와 골까지 연결시키면서 원활하게 경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했던 '만화 축구'를 오히려 일본이 제대로 보여준 꼴이었고, 이들의 조직 플레이는 상대팀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박수를 쳐줄 만했습니다.

주요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서도 주목할 만한 면들이 많았습니다. 해외에 진출해 기량 뿐 아니라 멘탈적인 면에서도 많은 향상을 이룬 일본 선수들은 많이 움직이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플레이로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하며 경기장을 찾은 일본 팬들을 흥분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늘 자신 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는 혼다를 비롯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주목받는 기대주 카가와의 플레이는 그 중에서도 돋보였습니다. 타이밍이나 세기, 완급 조절 능력까지 모든 면에서 두 선수는 일본이 기대할 만한 수준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이번 경기에서 3골을 모두 책임졌습니다. 우왕좌왕하던 한국 수비진을 꼼짝 못하게 한 이 선수들의 클래스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 ⓒ연합뉴스
자케로니 감독 부임 뒤,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면서 일본 축구는 한층 더 강해지고, 부쩍 자신감을 가진 듯했습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총체적인 위기를 맞았지만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16강에 진출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팀 리빌딩 작업에 박차를 가하더니 1년 만에 일본 축구는 업그레이드된 실력으로 그들이 원했던 '탈아시아'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특히 '자케로니 재팬'이 예상보다 빠르게 정착이 돼서 이전보다 다양한 축구를 구사할 수 있게 된 점, 아기자기한 맛의 축구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앞으로 일본 축구가 어떤 스타일로 바뀔지, 그에 따라 국제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 주목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았고, 특히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더 업그레이된 실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돼 이들이 만들어갈 스타일이 어떻게 정착되고 바뀌어나갈지 충분히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덩달아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3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조광래호의 분발을 더욱 촉구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번 한일전에서 나타난 일본팀의 경기력, 그리고 결과는 지난 19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0-1 패배 이상으로 가장 큰 충격을 가져다 줬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 경기 전 일본 언론들이 "한국 축구의 전성기는 지났다"라는 보도가 나와 한국을 자극한 바 있었는데 이번 경기를 계기로 이 같은 반응은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다시 일본에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18년 전 패배보다 더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이번 경기를 통해 제대로 느낀 조광래호가 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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