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은 좀처럼 관심이 가지 않던 영화입니다. 언뜻 봐도 이 영화는 <스피드, 택시, 트랜스포터>의 영향권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한국영화에서 이런 소재를 가지고 제대로 된 화면을 연출하기란 기대하기 힘들단 말이죠. 게다가 인지도와는 무관하게 주연을 맡은 이민기와 강예원에 대한 신뢰도 전혀 없어서 영 흥미가 생기질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인도에 다녀오느라 영화에 목 마른 제겐 선택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관람한 후에 이 두 가지 선입견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됐을까요? 하나는 앞으로도 쭉 이어지게 됐고, 다른 하나는 경솔한 예측이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경솔한 예측을 내린 쪽에 해당하는 것은 액션입니다. <퀵>이 보여준 액션은 기대치를 훌쩍 웃돌았습니다. 폭주로 인해 빚어진 사고를 스펙타클 - 이 표현 참 오랜만에 쓰네요 - 하게 보여준 오프닝부터 흠칫 놀라게 만들더군요. 뒤를 이어서 <다이하드 3>의 오프닝을 연상시킨 건물 폭파 장면도 꽤 그럴듯하게 보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퀵>이 제시한 바이크 액션은 한국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자동차 추격전으로 꼽히는 <황해>의 그것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러한 장면이 얼마나 숱한 고생 끝에 완성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퀵>에게 해줄 수 있는 칭찬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굳이 <퀵>을 보기로 한 건 단순히 선택의 폭이 좁았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조범구 감독의 연출에 대한 약간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차라리 안 보고 말았을 겁니다.

조범구 감독의 전작인 <뚝방전설>은 어긋난 청소년의 폭력으로 점철된 암흑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 중에서, 근작으로는 <폭력 써클>과 더불어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두 영화는 해당 소재를 단순히 흥밋거리로 전락시키지 않고 진득한 드라마를 녹여내고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죠. 십대 시절에 폭주족이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퀵>도 <뚝방전설>과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물은 천양지차고, 냉정하게 말하면 <퀵>은 졸작에 가깝습니다.

<퀵>은 액션에 있어서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초반부야 기대하지 않았던 눈부신 액션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퀵>의 액션은 분명 괄목상대할 만한 단계에 올라 있습니다. 단기간 내에 <퀵>에 버금가는 질주 액션을 선보일 영화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반면에 이 밖의 모든 요소는 그토록 훌륭한 액션을 깎아내리다 못해서 무용지물로 만들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특히 시종일관 코미디로 가득 채운 연출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액션이 제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드라마가 충실하지 못하면 그냥 눈요깃거리일 뿐입니다. <트랜스포머 2>가 그 좋은 예입니다. 변신 로봇의 경이로움도 일회성으로 그쳤고, 결국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로는 위력이 반감되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해서 영화는 차안대를 두른 말처럼 앞만 보고 무작정 내달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입이 안 되면 도무지 극에 몰입할 수가 없어 주인공의 생사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정확히 <퀵>이 그렇습니다. 범인은 주인공 두 사람을 순전히 우연으로 엮어서 함정에 빠뜨린 후에 자기 뜻대로 요리합니다. 그것까진 얼마든지 괜찮은데, 30분의 시간과 10미터의 거리를 제한한 것을 당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럴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퀵>은 '스피드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문구가 무안할 만큼 그저 요란한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 연출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저 두 가지마저 스릴이 아닌 코미디적인 요소를 만드는 데 활용합니다. 그 정도로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웃기려고 안달하고, 배우는 거기에 맞춰서 억지웃음을 양산하는 데 매진합니다. 이러니 마지막에 등장하는 과거사 따위는 아무런 의미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했던 <뚝방전설>도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의 범주에 들어갈 영화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뚝방전설>에는 적어도 드라마가 살아 있었습니다. <퀵>을 보면 도무지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질 않습니다. 누구라도 각색과 제작에 참여한 윤제균 감독의 그림자를 봤을 텐데, 두 분의 만남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긴커녕 아주 제대로 역효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저 고생한 수많은 스턴트맨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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