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창간 88주년 기념 특집기사’에 대한 논평

-어떻게 ‘광주의 비극 간접적으로 전하려 애썼다’고 주장할 수 있나-

3월 5일은 조선일보가 스스로 ‘창간기념일’이라고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로 조선일보는 창간 88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3월 5일자 신문을 100페이지로 발행하고 본지에서만 10개 지면을 털어 ‘창간 기념’ 기사를 쏟아냈다. 그 중에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조선일보가 5일부터 ‘서비스’한다는 ‘아이리더’를 3개면에 걸쳐 <일주일치 기사 메모·저장·검색 자유자재로>, <“새 기능 가득한 똑똑한 미디어”/“활자가 선명해 읽기 너무 편해”>, <컴퓨터 초보자도 클릭만 하면 아이리더 “OK"> 등의 제목으로 소개한 낯간지러운 자화자찬 일색의 기사류가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25면 전체에 실린 <건국 60년… 역사의 현장마다 조선일보가 있었다>는 조선일보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도저히 평상심을 유지한 채로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기사였다.

‘창간 88주년’임에도 “건국 60주년, 1948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정착시켜 나간 험난한 피와 땀과 눈물의 여정이었다”며 기어이 친일의 역사는 쏙 빼버린 것까지 그냥 넘어가자.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던 때 조선일보의 기사를 두고 “군부의 검열에도 ‘쿠데타’ 용어 사용”이라는 제목을 달아 “1면 제목과 사설에서 헌정 중단 사태를 빚은 군부의 불법 행동을 의미하는 ‘쿠데타’라는 용어를 쓴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행간에 숨은 뜻을 읽게 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포장한 대목에 이르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불과 한 달여 전 현직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1월 30일자 ‘김창균 칼럼’ <08학번에 들려주는 80학번의 추억>)에서조차 “5·16 군사혁명 세력이 그 시대의 유행이었던 사회주의 자립노선 대신 수출 주도노선에 올라탄 것” 운운하는 등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부르는 조선일보 아닌가.

‘유신’이 선포된 1972년 기사를 소개한 대목도 어처구니없다. 조선은 당시 자사 보도에 대해 “‘유신’에 대한 진의 파악이 어려웠던 가운데 이 조치를 지지하는 기사와 광고만이 지면에 살아남았다”며 ‘유신’을 찬양한 기사가 나온 이유를 유신정권의 ‘검열’ 탓으로 돌렸다. 유신이 선포된 바로 다음 날인 10월 18일 사설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에서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자발적·적극적으로 유신을 합리화시켜준 ‘군부독재 부역신문’이 과거에 대한 반성은 전혀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이만큼의 왜곡과 지난 역사에 대한 호도만으로도 우리는 분노를 금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정도조차 사실 약과다. 80년 ‘5·18 광주항쟁’ 당시 기사에 대해 조선일보가 “통제속에도 상황 전하려 애써”라고 표현한 데 이르면 그 어처구니없는 철면피한 모습에 한동안 말을 잊을 지경이다. 광주항쟁의 진실과 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노력해왔고, 신군부세력에 빌붙어 광주시민 학살을 외면했던 언론들을 고발해왔건만 적어도 조선일보에게는 깨알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깊은 자괴감까지 든다.

조선일보는 ‘창간 88주년 기념’ 기사에서 ‘5·18 광주항쟁’ 당시 자사의 보도를 단 201자로 정리했는데, 이 짧은 기사 안에 조선일보의 극악무도한 철면피스러운 모습이 다 담겼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당시 “광주로 기자들을 급파해 진행상황을 면밀하게 취재했다”며 “통제로 인해 기사가 나올 수 없었던 21일자에도 ‘신현확 내각 일괄 사표’ 기사에 ‘최근 소요사태 인책’이란 부제를 달아 간접적으로 광주의 비극을 전하려 애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31일자에는 ‘광주 시민 전체를 폭도로 몰지 말라’는 현지 반응을 실었다”며 마치 당시 조선이 광주 시민의 입장을 대변한 것처럼 평가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언론’의 탈을 쓰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주필을 지낸 김대중 기자가 쓴 1980년 5월 25일자 <바리케이드 너머 텅빈 거리엔 불안감만/「무정부 상태 광주」1주>에서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며 광주시민을 ‘난동자’로 표현하는가하면, 같은 날 사설에서는 “(남파 간첩들이) 민심을 흉흉케 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며 “피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분별력이 없는 법이다”고 주장해 광주항쟁을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분별없는 난동으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또 5월 28일 사설에서는 “30년 전 6·25의 국가적 전란 때를 빼고는 가장 난삽했던 사태에 직면한 비상계엄군으로서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고 학살자들을 두둔하고 미화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노골적이고 낯 뜨거운 ‘전두환 찬양’에 여념이 없었던 조선일보가 “간접적으로 광주의 비극을 전하려 애썼다”고 ‘자평’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광주항쟁’ 관련 기사에 대한 평가만큼 극악하지는 않았지만, 이밖에도 조선일보는 87년 6월항쟁과 관련해 당시(6월 12일) 기사 제목에 “‘개헌 논의 재개하라’는 제목을 달았다”며 마치 자신들이 시민들의 ‘호헌철폐’에 동참한 것처럼 억지를 부리는가 하면, IMF 국가부도 이틀 전까지 “외환위기 아니다”며 앞장서 위기 상황을 축소은폐했으면서도 “지면을 통해 국민들이 용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자평했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됐던 97년 당시 대선보도에 대해서는 “후보들의 정책과 국가관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려 노력했다”고 강변했다.

조선일보 직원들은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거짓을 자랑하듯 떠벌릴 수 있는가.

우리단체는 지난 2003년 조선일보가 창간 83주년을 맞아서 낸 ‘창간특집기사’에 대해서도 “왜곡으로 점철된 기사”라며 “창간특집기사에서조차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왜곡보도를 일삼는데 대해 우리는 분노를 넘어 안쓰러움을 느낀다”고 논평을 통해 충고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이 ‘창간특집기사’에서 ‘안티조선운동’을 온갖 왜곡으로 음해했기 때문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극악해졌다. 우리는 오늘 조선일보의 ‘창간특집기사’들을 보며 절망감을 느끼는 한편,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추악한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어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세상 앞에 드러내고 마침내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조선일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창간 100주년’이 되더라도 축하는커녕 비난만 자초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길 진심으로 촉구한다.

2008년 3월 5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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