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관행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대학원에 다닐 때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선배 언니들이 교수님을 도와 논문과 책을 집필하는 것을 보았다. 선배 언니들은 출판될 책에 교수님과 공동 집필자로 이름이 오르게 되어 있었다. 교수님과 공동 집필자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교수님이 읽어야 할 자료를 알려주면 선배들은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썼다. 그럼 교수님은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원고를 읽고 방향을 다시 잡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면 선배들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원고를 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선배들은 참고 자료를 찾아 읽고 추가했다.

집필 과정이 이상해 선배에게 물었다. 교수님이 책을 읽지도 않고, 원고를 쓰지도 않고 어떻게 집필자로 오를 수 있는지 물었더니 다들 그렇게 해왔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일하는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니 나 또한 더는 의문을 품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님은 언제나 열심히 책을 읽고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더는 생각해 보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오랜 시간 동안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된 제자들이 종종 찾아와 밥을 같이 먹었다. 제자들은 대학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계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학기가 시작된 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자가 찾아왔다. 오래전부터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묻던 제자였다. 입시를 앞두고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아 약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연락을 한 제자에게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할 수 없어 시간을 쪼개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는 더 예뻐졌다. 새내기 때와 다른 예쁨이 있었다. 말을 할 때 선택하는 단어와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졌다. 제자는 어떻게 지내냐는 일상적인 말에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적절하고, 부조리한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A학과의 학생들이 교수의 퇴진을 외치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이유는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고, 교재도 교수가 쓴 저서로만 선택해 수업을 했으며, 석박사를 자신의 종처럼 부려먹는다고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벌써 수업 거부가 한 학기 이상 진행되었다고 했다.

그때는 나는 제자가 말하는 부당함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하지 못했다. 학부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석박사의 경우 너무나 흔하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제자에게 ‘다 그럴 텐데’, 라고 말해 버렸다. ‘우리 때는 다들 그랬기 때문에 그게 문제 되는 일인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실 좀 별스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무면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우리가 관행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은 부당하고 부정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부당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옛날 사람이라 부당성에 대해 몰랐다, 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아마도 A학과 교수들도 부당한 일인지 모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전에도, 그전에도 아무렇지 않게 행해져 오던 관행을 부정한 일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별스럽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관행에 맞춰 일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은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이 왜 분개하는지 모른다.

제자가 찾아온 날, 사실 많이 피곤하여 약속을 미룰까 생각했었는데 미루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행이라고 생각하며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이 관행으로 묵인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다행이었다. 앞으로 세상은 관행이라는 말로 프리패스 되지 않을 테니.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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