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지만 정치에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마는 사택비. 그녀가 다시 궁으로 돌아온 후 검은 카리스마의 진수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충신 무진과 함께 궁으로 들어서 그의 순진한 정치력에 일침을 가하는 사택비는 타고난 정치가였습니다.

검은 카리스마 사택비와 우직한 충신 무진

자결하는 황후를 보고만 있어야 했던 무진. 그는 모든 것을 내걸고 황후를 죽게 만들었던 무리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숨긴 채 복수의 날을 기다리던 그에게 의자 왕자가 등장하고 그로 인해 위제단의 본부에서 사택비와 마주하게 된 무진은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포로로 잡고 궁으로 향합니다.

선대왕부터 황후와 의자 왕자를 해하려 했던 기록이 남은 살생부를 가지고 무왕에게 가면 선화황후의 억울한 죽음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무진과, 정치력에서 탁월한 감각과 카리스마를 가진 사택비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무진.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사택비는 오직 이 남자만을 생각할 따름입니다. 권력을 위해 자신마저 해하려는 아버지. 아버지의 명에 따른 위제단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내는 무진과 자신을 해하려 달려드는 위제단 두목 귀운을 막아서는 사택비의 모습은 대단했습니다.

칼을 들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귀운에게 맨 몸으로 나서며 뺨을 때리는 그녀는 개가 주인을 몰라본다며 질책합니다. 그 대단한 카리스마에 주눅 든 귀운은 칼을 거두고 무릎을 꿇어 진정한 권력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힘의 논리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내세운 사택비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던 아비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합니다.

사적으로 아버지이지만 당신은 그저 대좌평일 수밖에 없다며, 자신만이 이 나라이고 절대 권력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카리스마의 정점이었습니다. 권력을 위해서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잔인한 존재인 그녀가 보이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카리스마는 정치인의 본색이자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진이 원하는 것은 오직 선화황후에 대한 복수뿐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어간 황후가 세작이라는 누명을 벗고 황후를 죽게 만들었던 무리들에게 단죄를 하는 것, 그것만이 무진이 원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우직하고 단순한 무진과는 달리, 그 누구보다 무왕을 잘 알고 있는 사택비는 무진이 생각하는 그 무엇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선화황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인 궁남원으로 사택비를 데리고 간 무진은 무왕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무진의 가족들을 인질로 사택비와 살생부를 돌려받기 원하는 위제단에 맞서, 무진은 자신의 아내가 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을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자신의 충의로 인해 가족이 죽어야만 했던 무진은 다시 한 번 자신과 계백을 살리고 돌봐주었던 이가 눈앞에서 죽는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무진을 보며 "어리석은 사람. 자신의 가족도 돌보지 못하면서 충의를 따른다고 하십니까"라는 사택비의 발언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결코 충의를 따를 존재가 아닌 무왕을 위해 자신의 팔과 가족들을 잃어버린 우직하고 못난 남자 무진. 그 바보스러움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 무진.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믿고 있는 무왕은 무진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과 주군을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무진은 사택비의 말은 믿지 않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무왕은 궁남원의 긴 다리를 지나 무진과 사택비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무왕을 보면서 선화황후의 억울함을 풀 수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무진은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고 맙니다. 단죄해야만 하는 사택비에게 손을 내미는 무왕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무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바보 같은 남자였습니다.

칼로 베어 죽여도 모자란 상황에서 황후에게 손을 내미는 무왕의 모습은 더 이상 무진이 따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음에서 깨어난 후 무진이 아무런 미련도 없이 궁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더 이상 자신이 모셔야 할 주군이 무왕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무왕은 선화황후의 죽음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이를 방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철저하게 정치적인 그가 사택비가 가지고 있는 거대 권력에 맞서지 못하고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은 우직한 충신 무진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입니다.

사택비의 정치력을 넘어서지 못하는 무왕은 뒤늦게 사태를 확인하려 해보지만, 앞서서 모든 것들을 정리한 사택비로 인해 살생부를 가지고도 반격할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무왕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택비는 상대의 수를 모두 읽고 대처해 나갑니다.

귀족들의 사리사욕을 이용해 그들을 무왕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만드는 모습은 사택비이기에 가능한 정치력이었습니다. 귀족들의 권력이 극대화되는 정사암회의를 폐지하고 황제의 권력을 극대화하는 휼형제도를 도입하려는 무왕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는 사택비는 이를 철저하게 이용해 위기를 넘어가려 합니다.

무왕이 할 수 있는 강력한 모든 방법들이 이미 사택비의 머릿속에 있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가진 그녀는 무왕의 청을 모두 들어주며 역습할 준비를 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흔들림 없는 카리스마를 보이는 사택비는 진정 강력한 여장부임이 분명합니다.

무진이 백제에서 가장 용맹하고 탁월한 장수임을 알고 있는 은고. 자신의 아버지가 선화황후와 무진을 위해 세작과 관련된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죽음을 당해야만 했고, 자신과 어머니는 지금의 행수에게 팔려간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사택비에게 접근한 이유도 복수를 위한 시작이었지요. 후에 그녀가 의자 왕자를 선택하는 것 역시 이런 이유가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의 힘이 더욱 강력하게 다가오는 <계백>. 우직한 충신 무진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모했던 여인 사택비와 계백을 사랑하면서도 의자 왕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은고. 그녀들의 삶과 투쟁이 <계백>의 진정한 의미이자 재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백 장군으로 통해 잃어버린 백제의 모습을 조명하는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사택비와 은고일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남자의 신념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남자들 틈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 사택비와 은고일 수밖에 없음은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현실이 아님을 알고 속세를 떠난 무진과 계백.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계백의 형 문근이 이후 어떤 역할로 등장할지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무진과 계백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사라진 문근이 과연 적으로 등장할지 아니며 계백을 도와 강력한 존재가 될지도 궁금해집니다.

정치적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계백>은 무왕의 머리 위에 있는 사택비로 인해 더욱 흥미롭기만 합니다. 무왕으로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사택비에게 은고가 어떤 존재로 다가올지도 기대됩니다. 남자들보다 강인한 여성들의 지략 대결이 회를 거듭할수록 더해갈 것으로 예상되기에 사택비와 은고의 대결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귀족들을 규합해 무왕에 대항하려는 사택비와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복수를 꿈꾸는 은고. 그들의 활약이 계백의 성장보다 더욱 궁금해지는 <계백>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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