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건강 외면하는 언론의 각성을 촉구한다 -

경북 김천 코오롱 유화공장 화재진압 과정에서 페놀이 소방용수에 섞인 채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경북 구미 지역과 대구에서는 수돗물 공급과 취수 중단이라는 조처가 내려져 시민들은 불편과 불안에 휩싸였다. 지난 1991년에도 낙동강에서는 구미에서 페놀유출사고가 발생해 주변 지역 주민들이 구토·설사·복통 등의 증상을 일으킨 것은 물론 멀리 부산 지역 주민들까지 영향을 미치며 전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당시 정부는 상수원 보호를 위한 ‘4대강 특별법 제정’과 함께 30조원의 예산을 들여 각종 대책 마련에 힘썼지만, 2008년 3월 2일 또 한 번 낙동강 상수원에 페놀이 유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사고에 상수원이 또다시 오염된 것이다. 이는 언제든지 식수원이 사고로 인해서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단적 사례라 할 만 하다. 사고 발생 직후 환경관련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물론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권이 성명을 발표해 이번 사고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대운하’ 정책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대하는 언론들의 태도는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한겨레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신문과 방송들은 이번 낙동강 페놀유출사고를 그저 단순한 ‘사건·사고’로 다루는 데 머물렀다. 하다못해 ‘운하백지화국민행동(국민행동)’과 대다수 정치권에서 ‘논평’한 내용조차 단 한 줄도 인용하지 않았다.

페놀유출사고, 운하의 환경파괴 위험성 경고하는 사건

‘운하백지화국민행동(국민행동)’은 3월 3일 <낙동강 페놀유출사고, ‘운하’발 식수재앙의 예고편>이라는 성명을 발표해, 낙동강에만 ‘1991년 페놀사고’와 ‘2004년 다이옥신, 2006년 퍼클로레이드 검출 사건’이 발생했고, 2007년에는 춘천호에서 바지선 침몰에 따른 폐유유출사고가, 서울 한강에서는 수상택시 충돌사고 등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국민행동은 운하의 나라 독일에서도 매년 수백 건의 선박사고가 발생했으며, 지난 2001년 11월 라인강에서 약 800톤의 농축 질산염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고, 미국 오하이오 강에서는 바지선이 갑문 외벽과 충돌하는 사고로 인해 약 3만 리터의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자연 하천도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따르면 한강과 낙동강에 19개의 갑문과 16개의 수중보가 설치되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화물선이 강을 지나다니게 된다. 운행할 때 나오는 폐유와 폐기물만으로도 이들 화물선은 이미 식수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고, 조그마한 사고가 한 번만 발생하더라도 그로부터 야기되는 수질오염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공포가 될 것이 자명하다. 국민행동의 주장대로 이번 페놀유출사고는 운하가 생겼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보여주는 ‘예고편’인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추진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4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운하 건설을 토목공사 개념으로 보고 환경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인사청문회에 이어 운하 추진 의사를 재확인했다. 특히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만의 후보조차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반대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사실상 ‘운하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환경을 책임져야 할 사람의 인식이 이 정도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게다가 수질 오염 논란에 대해 “배가 다니면 스크류가 공기를 물속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수질이 좋아 진다”며 배가 많이 다니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대고 있다.

한겨레를 제외한 언론사, 페놀유출사고를 단순 사고로만 취급

한겨레는 이 상황에서 페놀유출사고가 주는 의미를 간과하지 않고 3월 4일 사설 <페놀 오염이 보여주는 ‘대운하’의 미래>에서 “이 사고의 의미는 다시 한번 상수원 주변에서 오염물질 관리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또 “만약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유출한 기름의 0.1%만 유출한다고 해도, 그건 대재앙”이라며 “게다가 운하의 물은 갑문으로 가둬지기에 재앙은 장기화·광역화된다”고 경고했다. 한겨레는 특히 수질 논란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못하는 이명박 정부가 ‘강변여과수’를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운하에 고인 물은 썩어 가고 강변에선 극소량만 취수할 수 있다면 국민은 어디에서 물을 구할 것인가”라고 꼬집으며 “국민 생명을 판돈 삼아 결과가 뻔한 도박은 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언론은 이번 사고를 단순한 사고로 치부하지 말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운하 사업에 대한 검증에 보다 철저하게 나서야 하며, 국민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지기키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낙동강 주변 지역의 취수 중단 상황과 사고의 책임 공방, 주민들의 불편함을 전하는 식의 보도만 쏟아낸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환경 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정치권에서 우려가 쏟아짐에도 대운하 정책을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새 정부에 대한 ‘몸 사리기’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언론사, 총선을 앞두고 대운하 정책 검증에 최선을 다하길 촉구

총선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대선에서도 대운하는 국민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며 뜨거운 감자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언론은 당시에도 대운하에 대한 적극적인 검증을 하지 않은 채, 사안을 조용히 덮어버렸다. 그리고 새로 출범한 정부는 이렇다 할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추진 의사만을 밝히고 있다. 벌써부터 운하 건설 예상 지역들은 투기열풍이 몰고 있다. 운하가 어떤 위험을 가져올지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언론에서 제공되지 않는 이상 이번 총선은 운하 주변지역의 개발이익을 둘러싼 투기자본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또한 한반도 대운하 못지않은 악몽이다.

이번 낙동강 페놀유출사고 관련 언론보도에서 보듯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국민들의 건강에 대해 별다른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현안이 될 대운하 정책에 대한 검증 역시 별다른 경각심 없이 단순하게 주장만 나열하는 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이 언론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총선보도에서도 그대로 이뤄질 것으로 보여 심각하게 우려된다. 그러나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론사들이 대운하 공약에 대해 철저한 검증에 나서기를 거듭 촉구한다.

2008년 3월 4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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