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유명스타 다카오카 소스케의 혐한류 발언에 이어 지난 7일에는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후지테레비 앞에서 반한류 시위가 벌어졌다고 알려졌다. 이들의 외양은 일단 반한류로 보이게끔 위장했지만 그들의 본색은 금세 드러났다. 반한류 시위에 맞지 않는 천황만세 제창 등은 무리 속에 다른 의도를 가진 자들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위는 반한류를 빙자해 군국주의 일본을 꿈꾸는 극우들의 책동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좀 한다는 사람이면 다 아는 일본 내 유명한 반한 커뮤니티 ‘2CH'가 주동이 된 이 날 시위에서 ’천황만세‘를 외치는 등의 모습은 8월 15일 전후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위 장면이다. 유명한 카미카제 자살 특공대들이 야스쿠니에 흩날리는 벚꽃으로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나눴을 정도로 야스쿠니는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이다.

8월 15일이 우리에게는 광복된 날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의 날이다. 그러나 이때를 즈음해서 야스쿠니 주변을 가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군국주의 일본을 그리워하는 극우파들은 그 패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헌법을 개정해 언제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런 사람들이 8월이 되면 전국에서 야스쿠니로 몰려든다. 그래서 8월의 도쿄는 한국인이 보기에 정말 역겨운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번 후지테레비 앞 반한류 시위가 반한류로 생각되지 않는 것은 이런 8월의 도쿄에 흐르는 특별한 기류 때문이다. 한류가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고 하필 지금 와서 반한류가 조성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런 극우파들의 극렬 행동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야스쿠니 주변은 과거 일본군 복장을 한 살벌한 눈빛의 극우파들이 종일 퍼포먼스를 벌이지만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평소의 도쿄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실제로 매년 8월 15일을 즈음해서 한국. 대만, 일본 3국 공동으로 야스쿠니 반대 집회를 벌인다. 일본 극우파와의 충돌을 염려해 일본 당국에서 야스쿠니 근처에의 집회를 허가하지 않지만 그 외의 장소에서 시위를 하거나, 가두행진을 하더라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특별히 적대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시위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카오카 쇼스케의 혐한 발언이 좋은 미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극우파의 한류 흠집내기는 실패한 작전으로 보인다. 8월의 야스쿠니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많은 극우파의 집결을 예상할 수 있지만 고작 600여 명이 모였다는 것은 반한류의 기치가 일본 극우파들에게도 타당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시위현장을 직접 본 것은 아니라 단언하긴 어렵지만 이번 시위의 중심에는 극우파들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류는 아직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군국주의 일본의 부활을 염원하는 극우파들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분노하고, 걱정해야 할 일이다. 8월의 야스쿠니는 어느 때라도 1945년 이전의 일본의 모습이고, 그때의 광기 그대로의 일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200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일본인의 야스쿠니 반대를 담은 방송을 내보낸 바 있다. <일본 처녀 아키코의 진실 찾기. 야스쿠니에 맞선 일본인>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보기를 권하고 싶다. 방송 촬영은 그나마 5월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8월의 야스쿠니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만큼 8월의 도쿄 야스쿠니에는 무서운 광기가 소용돌이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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