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일본과의 평가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0일 저녁, 일본 삿포로에서 일본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을 겨냥한 평가전을 갖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평가전이라 할지라도 일본과의 경기이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치러야 하는 조광래호는 이번 경기 승리를 통해 꾸준한 상승세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한일전을 앞둔 조광래호지만 여러 가지 악재들이 덮치면서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주축 스트라이커인 지동원이 새롭게 이적한 잉글랜드 무대에서의 적응 차원에서 빠진 것을 비롯해 이청용이 뜻하지 않은 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여기에 이청용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됐던 손흥민마저 감기 몸살로 결국 일본행 비행기에 타지 못하며 한일전에 나서지 못하게 됐습니다. 공격수들의 잇단 낙마로 고민에 빠진 조광래 감독은 이참에 새롭게 공격진을 구성해서 3차예선에 활용할 다양한 공격 루트를 찾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 가능성을 확인하고,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당찬 각오를 보이고 있는 조광래호입니다.

일본 삿포로, 즉 적지에서 열리는 경기지만 오히려 한국은 일본에 가서 더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지난 2000년 이후 한국에서 일본에 패했던 것은 2003년 서울에서 열린 평가전과 2005년 대구에서 열린 동아시아컵 모두 두 차례나 됐지만 일본에서 일본에 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일본에 졌던 것이 1998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현 동아시아컵) 때였으니 13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만큼 한국은 일본에서 일본과 경기를 가질 때 오히려 더 힘을 내 왔습니다.

특히 지난해 두 차례나 일본에 가서 경기를 펼쳐 모두 이긴 좋은 기억도 갖고 있습니다. 2월 일본 도쿄에서 일본을 만난 한국은 3-1 완승을 거두면서 이전 중국과의 경기에서 0-3으로 참패했던 것을 보기 좋게 씻어냈습니다. 이어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양박' 박지성, 박주영의 골로 2-0 완승을 거두며 역시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당시 경기를 현장에서 봤던 저는 여태껏 직접 본 축구 경기 중에서 가장 시원하고 짜릿했던 승리로 이 사이타마에서 열린 완승을 기억해 왔습니다.

▲ 울트라 닛폰 (사진: 김지한)
당시 이 경기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남아공월드컵 출정식을 겸으로 해서 열렸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출정식에 한국을 초청한 것에는 라이벌팀을 이기고 기분 좋게 월드컵 출정에 나서겠다는 분명한 의도가 깔려 있었고, 이 때문에 이 평가전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분명히 배울 것이 있다고 한 허정무 당시 대표팀 감독은 의연하게 한일전을 준비했고, 베스트 멤버를 풀가동해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래도 울트라 닛폰(일본 서포터)의 엄청난 환호성과 들뜬 분위기 때문에 과연 한국이 제대로 된 경기 운영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과 우려는 경기 시작 5분 만에 보기 좋게 사라졌습니다. 박지성이 홀로 툭툭 치고 들어가다 기습적으로 골에어리어 오른쪽 부근에서 강력한 슈팅으로 일본 골망을 가르며 선제골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골을 넣은 뒤 울트라 닛폰을 향해 쳐다보며 "봐라, 아시아 최강은 한국이다"라고 하는 듯한 세레모니는 울트라 닛폰을 더욱 멍하게 만들었고, 이를 본 우리 축구팬들은 "역시 캡틴박"이라며 칭찬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후에도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이 붙는 계기가 됐던 차두리의 활약을 비롯해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일본에 압도하는 플레이를 펼치자 일본 관중들은 초조해지고 답답해하는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전반전이 끝나자 일본 관중들은 흡연이 가능한 장소에 몰려들어 담배를 연신 피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그 짧은 시간에 줄담배를 피는 사람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은 듯 했던 일본 관중들의 모습이었습니다.

▲ 지난해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은 뒤 일본 서포터를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박지성 ⓒ연합뉴스
후반에도 경기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줄기차게 공격 축구를 구사하면서 일본 문전을 두드렸고, 결국 후반 종료 직전 박주영이 패널티킥 골을 성공시키면서 2-0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한국을 보기 좋게 이기고 출정식을 갖겠다던 일본 축구의 '야심찬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됐고, 관중들은 곧바로 경기장을 떠나기 바빴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실에서는 허정무 감독에게 박수를 쳐주고 스고이(すごい, 대단하다)하며 치켜세우던 일본 기자들이 있었던 반면, 오카다 당시 일본 감독이 기자실에 들어왔을 땐 냉랭한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일본은 이 경기를 계기로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쾌조의 경기력으로 한국과 함께 16강에 오르기는 했지만 경기 상황만 놓고 보면 한국 축구가 일본을 상대해서 이렇게 시원하게 이긴 경기는 참 간만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던 때가 바로 사이타마에서 열린 이 평가전이었습니다.

이후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평가전을 갖고, 지난 1월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만났던 한국 축구는 조광래호 출범 후 3번째로 맞는 한일전에서 필승을 다짐하며 결전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다운, 조광래호 색깔에 맞는 활력 넘치는 플레이로 적지에서 일본을 무너뜨리고 기분 좋은 승리를 안겨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 사이타마에서 열린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가 이번 삿포로 원정에 나서는 선수는 모두 9명이나 됩니다. 최근 일본이 "한국 축구가 아시아 맹주라는 것은 옛 이야기"라며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이 마당에 조광래호는 지난해 사이타마에서 이겼던 그 순간처럼 짜릿하고 화끈한 승리를 제대로 보여줄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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