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갓 탤런트 4주차는 죽음의 조로 불릴 정도로 쟁쟁한 참가자들이 몰려 있었다. 결과는 심사위원 모두가 1위로 꼽았던 팝핀소녀 주민정 양이 문자투표에서도 역시 1위의 표를 얻었고, 남은 두 팀 중 립싱크 시스터즈 아이유브이가 나머지 본선 티켓을 차지했다. 결국 죽음의 조는 여고생들의 대란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까지 본선 진출을 놓고 다퉜던 48현 가야금 천새빛은 아쉽게도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렇지만 3위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4주차에서는 지난 때와 달리 주목할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심사위원 박칼린에 대한 놀라움이고, 다른 하나는 팝핀소녀의 무대를 환상적으로 만들어준 tvN의 무대영상 솜씨이다.

먼저 팝핀소녀가 춤을 출 때에 갑자기 무대 뒤편 스크린으로 주민정 양의 동작이 조금씩 딜레이되며 영상으로 이어졌는데, 그 모습이 대단히 환상적이어서 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는 현대음악에서 간혹 시도되기도 하는데, 자신이 연주한 선율을 그대로 녹음해서 다시 재생해 독특한 이중주 혹은 다중주 음악을 혼자서 만든다. 그런 것처럼 영상효과로 인해 주민정 혼자서 많은 사람들이 군무를 하는 듯한 효과를 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진정 놀랍고도 반가운 일은 역시 박칼린에게서 일어났다. 그 말로 인해서 박칼린에게 새삼 반하게 됐다. 그 장면은 48현 가야금연주 천새빛의 공연 후의 일이었다. 48현 가야금 천새빛이 연주한 후 박칼린은 심사평을 말하기 전에 객석을 먼저 돌아보며 자신이 할 독설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담담히 48현 가야금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가야금이라는 악기의 특성이 있습니다. 몇 가지가. 하프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농현들이나... 이것들이 없어서 저는 왜 가야금을 써서 하프 식으로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박칼린은 장진이 천새빛을 2위로 예상한 것과 달리 8위라는 낮은 순위를 내놓았다. 그만큼 개량 가야금에 대해서 불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박칼린이 개량 가야금에 대해 일침을 놓은 것은 정확한 말이었지만 결코 하기 쉬운 말은 아니었다. 실제 천새빛이 연주한 악기가 48현 가야금은 아니다. 24현금을 2대를 나란히 놓고 연주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국악에 관심이 적다고 하더라도 우리 가야금이 12줄이라는 것쯤을 알 것이다. 그러나 국악 현대화라는 이름하에 악기 개량이 이루어졌고 12줄이었던 것이 17, 18, 21현으로 늘어나더니 근래에 와서는 25현으로 정착되었다.

가야금이 그렇게 되면서 죽어나는 것은 학생들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5현 개량 가야금도 해야 하고, 당연히 전통 가야금인 산조 가야금과 법금(정악 연주용)까지 모두 3대의 가야금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학생만 고생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가야금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야금의 맛을 어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박칼린이 말한 대로 ‘농현’에 있다.

농현이란 줄을 퉁기거나 뜯는 오른손과 달리 안족 아래 부분을 왼손으로 눌러 들릴 듯 말 듯 한 여음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현악기에는 농현이 되는 것이고 관악기의 경우라면 농음이 된다. 이처럼 음의 끝을 흔드는 것이 우리 전통 음악의 특징인데 그것은 같은 동양이라도 중국이나 일본의 여음과도 분명한 구분을 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서 농현이 없다면 가야금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박칼린은 서양음악에 근본을 두고 있지만 국악에 대한 공부와 애정도 남다르다. 국창 박동진 선생에게 판소리를 사사하기도 했으니 그 깊이는 분명 인정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러나 그런 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신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정말 중요한 자리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근본에 대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말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국악계조차 문제를 삼지 않는 악기 근본에 대한 말이었기에 박칼린의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도발일 수도 있다.

요즘 국악공연을 가면 주로 볼 수 있는 것은 12현이 아닌 25현 개량가야금이다. 필요에 의해서 개량됐다고는 하지만 박칼린이 말한 것처럼 가야금을 하프처럼 연주하거나 혹은 피아노에 버금가는 음역을 욕심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 의문을 티비에서 당당히 밝혀준 박칼린의 곧은 심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짧은 몇 마디였지만 여고생 대란보다 더 놀라웠던 박칼린의 퓨전 국악에 대한 반격이었다. 국악의 꽃은 가야금이다. 그 꽃이 혹시 시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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