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민국 영화계에 재앙의 시기가 찾아 왔다. 무려 92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8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아유레디' 64억 원이 들어간 '예스터데이'가 모두 망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제작사와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3년 126억 원이 들어간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 80억이 들어간 '청풍명월', 76억 원의 '내츄럴시티', 73억의 '튜브' 등도 대한민국 블록버스터의 재앙을 만들어 갔다.

올해는 2002년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진 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10억의 '고지전', 100억대의 '퀵', 130억이 넘는다는 '7광구', 90억의 '최종병기 활'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과 2003년의 참패가 다시 재현될 것인지 아니면 나름의 성과를 만들어 낼지는 이 영화들이 극장에서 사라질 때 쯤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개봉한 고지전과 퀵이 흥행을 떠나 작품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고, 막 개봉한 7광구는 작품 자체에 대한 비난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내기술로 만든 3D라는 점이 흥미로 작용해서인지 쾌조의 흥행을 보이고 있으며, 블록버스터 대전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될 만큼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최종병기 활'이 있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다른 나름의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3와 해리포터 마지막편이라는 엄청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와 함께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나름의 위상을 가지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판도 비난도 있겠지만 나름의 미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 영화계에 확실한 희소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희소식이 있다. 바로 작은 규모의 음악영화인 ‘플레이’가 1만 관객을 돌파하며 작은 영화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역대 국내 애니매이션 흥행 순위 1위였던 로보트 태권브이 디지털복원판(72만명)을 넘어서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블록버스터의 흥행 사이에서 말이다.

다양한 블록버스터와 함께, 이 작은 영화와 색다른 장르영화의 성공은 대한민국 영화계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향수에 의존했던 '로보트 태권 브이'를 넘어서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수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실패해야만 했던 대한민국 애니매이션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들이 어우러지고 있는 대한민국 여름의 극장가는 비록 트랜스포머의 변신로봇에 한 번 놀라고 해리포터라는 전 지구적 작품의 안녕에 또 한 번 휩쓸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영화 한국적 정서로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렇듯 자신의 문화가 당당하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한류 1세대였던 영화의 힘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2011년 여름의 극장가가 아닐까 싶다.

조금 아쉬운 것은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플레이와 같은 작은 영화들은 겨우 4~7개 극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고, 그 또한 계속 상영이 아니라 널뛰기로 상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이 조금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영화계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5~6개관 이상 되는 멀티플렉스들은 의무적으로 작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는 상업적인 예술이지만 어쨌든 예술이고 문화이므로 한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보호 방안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제처럼 말이다.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까지 함께 어우러진 지금의 영화계는 너무나 아름답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달라지겠지만 영화판 전체로 본다면 축제의 장인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한국 영화에 푹 빠지길 그리하여 그 다양성과 풍성함에 같이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