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한창이라는데, 경제 양극화 현상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민들은 '강남 땅 부자'라는 뜻의 '강부자' 내각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낸 새 정부 각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솟구치는 장바구니 물가에 기가 눌린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경제가 살아나면 이 같은 박탈감이 사라지고 물가도 안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였을까?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빈부격차 문제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되어 왔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재투성이 아가씨는 경제 양극화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의 드라마적인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경제 양극화 폐해의 드라마적 변형

그동안 방영되었던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대한민국 1%의 이상한 서민 사랑의 변형이다. 최근 트랜디드라마의 퇴조와 함께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주춤하는 경향이 있지만, 재벌과 서민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 SBS <행복합니다> ⓒSBS
그런 만큼 재벌과 서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짚어보겠다는 기획 의도로 지난 2월 첫 방영을 시작한 SBS 주말극장 <행복합니다>(김정수 극본, 장용우 연출)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이 제법 뜨겁다.

<행복합니다>는 재벌가의 자식들이 서민이나 빈곤층의 자식들과 사랑하고 결혼하는 이야기이지만,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재벌과의 사랑을 통해 신분상승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 넘치는 서민들의 삶을 통해 재벌들의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거스르는 경향이 강하다. 이 같은 경향은 한 밤중에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잡기 위해 속옷 바람으로 뛰어나가는 가족의 모습을 경쾌하게 묘사한 첫 회 도입부에서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공간은 늦둥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홀아비로 살면서 식료품 도매상을 운영하는 '이철곤(이계인 분)'의 집이다.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겠다고 가게 물건을 빼돌리면서 아버지의 속을 썩이는 철없는 큰 아들 '이준기(김종서 분)', 대기업의 홍보실 대리로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인 둘째 아들 '이준수(이훈 분)', 대입에 실패해 삼수를 하지만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PC방이나 하면서 살고 싶은 막내아들 '이준영(안용준 분)'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이철곤의 집안 풍경은 지극히 평범한 서민의 삶을 잘 보여준다. 또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아들 '이용재(김철기 분)'를 고아원에서 찾아내 친아들처럼 키우는 이철곤이나, 홀아비로 늙어가는 사위를 새 장가 보내기 위해 적극 나서는 '장모(김용림)'의 모습 역시 지극히 인간적이라 할만하다.

'재벌가의 자녀, 모두 서민과 사랑에 빠지다'…진부하고 작위적인 구도

<행복합니다>를 끌고 가는 핵심 인물은 이준수이다. 평범한 집안의 아들 이준수가 재벌가의 딸 '박서윤(김효진 분)'과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재벌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재벌과 서민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에서 재벌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비인간적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행복합니다>의 재벌가 '박승재(길용우 분)'의 집안 풍경은 나름대로 인간적인 면모가 넘치는 곳으로 묘사된다.

박승재는 인간을 중시하는 경영 방침을 가진 인물이고, 큰 딸 박서윤도 재벌가의 딸이라는 것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아버지 회사에 공채 입사할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다. 무용을 전공하는 막내딸 '박애다(이은성 분)' 역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철부지로 기존의 재벌가의 딸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행복합니다>의 재벌가는 화려한 외형과 달리 인간적인 면모가 넘쳐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다만 박서윤의 어머니 '이세영(이휘향 분)'과 아들 '박상욱(이종원 분)' 정도가 전형적인 재벌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남편과 아들, 며느리를 회장님과 상무, 정대표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이세영의 모습은 재벌가의 허위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SBS <행복합니다> ⓒSBS
<행복합니다>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재벌과 서민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다소 진부한 구도를 차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재벌가의 자식들이 모두 평범한 서민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라는 점이다. 박상욱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재벌가의 여자와 결혼했지만 고아원 출신의 비서 '지숙(채영인 분)'을 여전히 사랑하고, 박서윤은 입사 동기인 이준수와 사랑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박애다도 고아원 출신의 복서 지망생 '강석(하석진 분)'을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드라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재벌답지 않은 '박승재'와 '박서윤',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 녹일 수 있을까?

실제 현실에서는 옷깃조차 스칠 것 같지 않은 재벌과 서민의 사랑과 결혼이 일상사처럼 묘사되는 것은 드라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된다. 부모의 재력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새로운 신분사회에서 재벌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결속력을 다져가는 경우가 많다. 이제 1970년대 개발시대의 성공 신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 만큼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대한민국 1%의 서민 사랑은 경제 양극화의 폐해에 대한 시청자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 방식이 꼭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대한민국 1%의 서민 사랑이 차고 넘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보고자 하는 대중의 욕망이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짜릿한 전율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만에 하나라도 서민의 건강한 정신이 재벌의 폐쇄적인 삶을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것이다.

대한민국 1%, '강부자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녹이는 방법은 그토록 수없이 강조되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부(富)'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상대적 빈곤감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합니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재벌가의 안주인 '이세영'이 정기적으로 고아원에 후원하는 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긴 어렵다. 오히려 재벌이면서 재벌답지 않은 '박승재'와 '박서윤'이 어떻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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