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아버지가 풀지 못한 문제, 이제라도 김 사장이 풀어야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께!

우선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 발행인에 선임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 사장 스스로 축하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울 줄 압니다. 얼마 전에 아버님(김병관 회장)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천붕지통: 天崩之痛)'을 당했으니 말입니다. 뒤늦게나마 이 글을 빌어, 선친의 명복을 빌고 김 사장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 자체가 든든한 배경이 되지요. 동아일보라는 큰 신문사를 경영하는데야 오죽하겠습니까?

▲ 조선일보 3월7일자 2면.
이제는 동아일보 경영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니 어깨가 무거워 올 것입니다. 그 심정도 이해합니다. 더욱이 신문 구독자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사돈회사'인 중앙일보가 자금력을 무기로 상품권이나 현금 등 경품을 무차별로 뿌려대는 것에 대해 방어 차원에서라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경품을 제공할 수 밖에 없는 동아일보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게다가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동아일보의 지국들도 일부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는 판이니 마음이 무거울 것입니다.

제가 김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에 관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압정치가 극에 달했던 1974년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촉발된 언론자유수호 투쟁은 박정희 정권에 굴복한 김 사장의 할아버지 김상만 사장이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 150여명을 해고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 때가 75년 3월 17일이지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 당시 동아일보 광고국장이었다지요.

113명의 동아투위 선배 중 12명이 이미 타계

그 때부터 거리로 내쫓긴 젊은 기자 113명이 동아투위를 결성하고 정권과 동아일보사를 상대로 한 언론자유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메아리 없는 투쟁을 계속한 지 33년이 돼 갑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가정을 갓 꾸리기 시작했던 20대, 30대 젊은이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113명의 동아투위 소속 언론인 중에서 열 두 분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이제 101명의 할아버지들만 남았습니다.

김 사장!
얼마 전 아버지 김병관 전 회장이 돌아가셨을 때 동아일보와 많은 신문들이 고인을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분으로 소개하셨지요?

솔직히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고, '과연 이렇게까지 칭송해도 되나' 싶은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가져 온 '6·10 민주항쟁'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가 끼친 영향 자체가 지대했으므로, 망자(亡者)에 대해 관대한 우리 문화와 관습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김상만 할아버지나 아버지 김병관 회장도 돌아가실 때까지 동아투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듣기로, 실제로 김 사장의 할아버님과 아버님께서 생전에 동아투위 사태에 대해 솔직히 사과하고, 상징적인 행위가 될 지도 모르지만 해고된 동아투위 기자들을 복직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할 생각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지요? 그 이유를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33년 전 당시 김 사장은 우리나이로 12살로 초등학교 5학년이었겠지요. 따라서 상대적으로 동아투위 선배들에 대한 해고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입니다.

작고한 아버지와 12명의 동아투위 선배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그래서 지금이라도 김 사장이 나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끝내 풀지 못하고 대를 이어 유산으로 남긴 그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뒤 변변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가 자식들에까지 부담을 지우고 세상을 떠난 열 두 분을 해원(解寃)하고 동아일보를 원망하는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길입니다.

이제 나라도 민주화되었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들에 재갈을 물렸던 독재정권을 몰아낸 지도 20년이 지났습니다. 정치적인 부담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이지요.

남은 것은 오로지 김 사장의 결단 뿐입니다. 김 사장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동아투위 문제는 김 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분들이 무슨 그리 큰 욕심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들을 길거리로 내 몬 독재자 박정희와 김상만 회장 뿐만 아니라 김병관 회장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해 동아투위 선배들께서 증오가 남아있으면 얼마나 남아있겠습니까?

동아투위 문제는 더 시간을 끌어 살아있는 101명의 선배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김 사장은 주목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그 부담은 영원히 동아일보와 김 사장 그리고 조상들의 오욕으로 역사에 두고 두고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김 사장의 결단은 그 내용이 복잡하거나 특별한 계산이 필요하거나 절차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결단만 내리면 됩니다.

그 이유는 동아투위 선배들의 요구 자체가 지극히 간단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 사장이 직접 행위에 가담한 것은 아니지만, 동아일보사와 돌아가신 선대 회장들을 대신해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01명의 동아일보 선배들에 대한 전원 복직을 결정하십시오. 그 분들 중에서 아직도 젊은이 못지 않은 필력(筆力)을 보여주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므로 혹시 몇분은 실제 동아일보에 복귀해 기자로 일을 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러면 어떻습니까? 편집위원이나 논설위원으로 위촉하거나 칼럼니스트로 고용하시면 그 자체가 언론계의 또 다른 귀감과 자랑스런 역사로 남을 것입니다.

제가 보내는 이 편지를 못난 언론계의 선배가 보내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고, 동아투위 선배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늘 선배들에게 낯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언론노조 전 위원장의 간곡한 당부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동아투위 사태 해결, 신문사 발행인으로서 좋은 인상 남길 절호의 기회

제가 6일 김 사장이 대표이사 부사장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오랜 군사독재시절 야당의 대변지로서 정권교체와 민주주의를 바라던 국민들의 희망이 되었던 동아일보가 최근 몇 년 동안 동아일보를 아끼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어찌 동아일보가 걸어 온 길을 다른 두 개의 족벌신문들과 비교하겠습니까? 제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70호가 채 안되는 동네에 동아일보를 보는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집으로 달려가 동아일보를 거의 매일 읽기도 했습니다.

둘째는 4년전 쯤으로 기억하는데, 동아일보사 노동조합 위원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적이 있지요. 그 때 처음으로 김 사장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동아일보 근처에서 열린 뒷풀이 장소까지 나온 김 사장이 가지고 온 양주로 폭탄주를 직접 만들어 돌리는 것을 받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소탈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대표이사 사장 발행인이 되었습니다. 명실상부한 언론인이자 최고 경영자가 된 것이지요. 신문사 발행인이 되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거운 자리지요.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평가를 듣기 바랍니다.

동아일보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그 첫 출발점은 동아투위 사태의 해결이어야 합니다. 김 사장이 창간 88주년을 맞는 동아일보의 발행인으로 세상에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88주년 창간기념식은 동아투위 선배들과 동아일보의 후배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손에 손 잡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화합의 합창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글이 길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