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위인은 과연 누구일까. 한 언론은 소셜테이너로 오피니언 리더가 된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 순위는 부끄러울 정도로 낮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MBC가 거부한 김여진의 이름도 있는데 상당히 높은 영향력 순위(251위)라는 점은 놀라웠다. 보도는 이런 소셜테이너의 약진을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실재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세력으로 분석한 점도 의미를 갖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트위터 영향력으로 위인을 결정할 수는 없다. 또한 나라를 지켰거나 노벨상 정도는 탄 업적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위인은 없는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정말 이 시대를 지탱해준 위인은 누구일까?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라진 것 중 하나가 기인이란 단어이다. 사실 위인 리스트는 어떻게든 작성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찾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기인이다. 앞서 말한 트위터 영향력 2위의 이외수는 한때 기인으로 비춰졌지만 현재는 기인의 길 바깥에 서 있어 보인다. 그래도 기인 리스트를 만든다면 소설가 이외수의 이름을 빼기는 섭섭한 일일 것이다. 백발노인이 돼서도 기다란 꽁지머리를 고집하는 것만으로도 기인의 명칭을 붙이기에 족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개그맨의 조상 전유성을 기인 명단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아니 전유성의 이름이 없다면 그것은 기인열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전유성 자신은 기인이란 호칭을 싫어한다지만 그는 어떻게 봐도 기인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유성은 위인보다 훨씬 더 위인다운 기인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가 개그콘서트를 만들고, 주병진, 이문세 등등의 대스타를 발굴해낸 혜안이 있다는 업적도 중요하지만, 전유성이 그의 후배들에게 그리도 더 나아가 경직된 이 사회에 던지는 자유로운 선언이야말로 그를 기인인 동시에 위인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전유성이 승승장구에 나왔고 몰래온 손님으로 미리 예고했던 김희철이 출연했다. MC로 성공하고 싶은 김희철을 위해 이수만이 독선생으로 전유성을 맺어줬던 인연이 있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전유성은 마지막으로 김희철에게 해준 말이 참 남다르다.

“나이가 친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얘기가 통하면 친구가 된다”며 “어린 친구로 같이 잘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흔히 나이든 대선배가 님 빼고 형이라 부르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격이다. 삼촌이나 큰아버지뻘의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데는 적잖이 스스로 젊어지고 싶다는 욕구도 있다. 그러나 전유성에게는 그런 욕구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앞서 그가 말한 것처럼 ‘누구 밑에’ ‘누굴 데리고’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의 개념일 뿐이었다. 한국사회는 낯선 사람들끼리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것인 연식확인이다. 서열 정하기가 최우선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런 파격의 정신은 기성세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범이자 선물이다.

전유성이 김희철에게 하는 MC 수업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100가지 단어를 쓰게 해서 그 중에서 남들과 같은 것을 지우고 남는 것들을 기억하게 하는 수업방식은 규격화된 세상에 아무나 할 수 있는 발상은 아닐 것이다. 이 위대한 기인의 발상법은 연예인들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전유성처럼 생각하기. 참 쉬울 듯하면서도 어쩌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럴수록 전유성처럼 생각하기는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승승장구 전유성 편을 꼭 보기를 권하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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