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TV조선 <바람과 구름과 비>는 최근 방송 중인 작품 가운데 유일한 사극으로 5%대의 안정적 시청률을 확보하며 고군분투 중이다(7월 19일 5.1% 닐슨코리아). 이병주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0권 분량의 방대한 내용을 21부작 드라마로 압축하여 전개,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18일 방송된 18회 마지막 장면, 대원군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고종이 최천중과 그의 아버지를 사면복권하며, 최천중을 잡으려 군사를 풀었던 대원군의 허를 찌르는 반격을 개시했다. 최천중은 3년 전 대원군에 의하여 쫓기다 결국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이역만리까지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동안 사랑하는 여인 봉련은 대원군의 볼모가 되어 대원군이 원하는 미래를 점쳐주는 신세가 되었다. 돌아온 최천중은 자신의 적인 건 물론, 이제 경복궁 중건 등으로 백성들에게 장동 김문 못지않게 원성을 사고 있는 대원군 이하응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우선 자신과 인연을 맺은 규수 민자영을 고종의 왕비로 간택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한편, 고종을 사이에 두고 대원군과 힘겨루기에서 밀리고 있는 대왕대비 조씨에게 접근하여 대원군 이하응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한다. 섭정이란 미명 아래 전권을 휘두르는 대원군에게 최천중의 복권은 그저 한 사람 최천중의 재등장 이상, 효(孝)를 내세워 허수아비 신세로 만들어 버린 고종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이요, 정적인 대왕대비와의 힘겨루기에서 허를 찔린 형국이 되었다. 거기에 최천중의 후원을 받은 왕비는 호시탐탐 고종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최천중은 고종을 설득하고 대왕대비, 중신들과 모의하여 당상관 회의에서 대원군의 실각, 일종의 '명예혁명'을 시도한다. 하지만 19회, 야심차게 시도한 최천중에 의한 대원군의 퇴진은 바로 전날 발생한 경복궁에서의 화재 과정에서 당황한 고종에 의해 대원군이 먼저 선수를 치며 물거품이 되고 만다.

대원군의 실각을 도모한 최천중

똑같이 고종 앞에서 마주한 최천중과 대원군 이하응. 하지만 바로 하루 차이에 방영분 속 상황은 하늘과 땅만큼 달라졌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고종, 그리고 그의 섭정자 대원군을, 이제 다시 자신의 손으로 물리고자 했던 최천중의 시도는 19회에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최천중은 일찍이 그의 오른팔과 같은 용팔용에서 '조선의 난파선론'을 피력한 바 있다. ‘난파선과 같은 조선,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하고 말이다. 망할 운명이니 일찌감치 스스로 몸을 뺄 것인가, 아니면 난파선이라도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배와 운명을 함께할 것인가. 거기서 최천중은 후자의 운명을 선택했다. 멸문지화를 당하고 점바치가 된 신세에도 백성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들을 돕기 위해 자기 자신과 재산마저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최천중.

그런 그가 자신의 점바치 능력을 활용하여 조선을 쥐고 흔드는 부패한 권력을 갈아엎고자 하는 바는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그는 대원군과 손잡고 장동 김문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고 성공했다. 그 뒤를 이어 그가 왕재라 예언했던 고종이 철종의 뒤를 잇고, 그의 아비 이하응은 대원군이 되어 섭정, 하지만 말이 섭정이지 실질적인 ‘국정의 주인’이 되었다.

허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고자 대원군 이하응과 백성들을 위한 권력을 세우겠다는 '개혁' 의지에서 의기투합했던 최천중.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후대의 왕이라 치켜세우는 최천중을 노여워하는 대원군은 이미 백성들을 위한 권력보다 자신의 권력이 우선이었다. 당연히 최천중과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다.

TV CHOSUN 특별기획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최천중은 그 ‘순진무구’한 개혁에의 의지로 호랑이한테 나라를 맡긴 셈이 되었다. 그의 사주명리학적 능력을 활용하여 부패한 장동 김문을 밀어냈지만, 결국 그가 손잡은 건 또 다른 권력일 뿐인 셈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내민 건 훗날 대원군의 가장 큰 정적이 되는 명성황후 민자영이었다. 그의 의도야 어떻든, 결국 최천중은 19회까지만 보면 그의 알량한 개혁에의 열망으로 조선을 구렁텅이로 빠뜨려가는 '조력자'가 되는 셈이다.

이른바 주인공의 캐릭터 붕괴일까? 그보다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난파선에 기꺼이 남고자 하는 '영웅적 캐릭터'가 성장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부패한 권문세가, 그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꺼이 기며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던 대원군 이하응이 보인 모습은 왕조 시대 '개혁'을 꿈꾸던 최천중에게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인 왕권은 권력의 맛을 본 순간, 이미 더이상 '백성'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한 욕망의 정치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대원군을 '결자해지'해야 하는 처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유부단하기 그지없는 고종, 거기에 조력자일 줄 알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될 명성황후의 야망은 '위로부터'의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꿈꾸던 저잣거리의 영웅 최천중에게 결국은 '명예롭지 않은' 선택의 길에 대한 고민을 안길 것이다.

왕조 시대란 시대적 한계 안에서 백성들의 '안온한 삶'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대원군도, 민자영도 결국은 백성들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면, 그 어떤 왕도 왕의 측근도 백성들의 평안을 도모해 줄 수 없다면, 결국 최천중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인가? 그것이 <바람과 구름과 비>가 마지막에 보여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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